“수많은 질곡과 역사적 흔적을 간직한 피반령과 수리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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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질곡과 역사적 흔적을 간직한 피반령과 수리티재 ”
  • 박진수 기자
  • 승인 2018.01.1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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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의 명소(15)-피반령과 수리티재
▲ 피반령 전경사진.

보은군의 가장 역사적인 길이라면 지금의 25번 국도를 뽑을 수 있다. 25번 국도는 충청북도의 도청 소재지인 청주시 가덕면을 지나 보은군으로 향하고 다시 영남 제일로를 따라 상주시로 이어지고 한양을 출발해 국토의 남단 경주, 부산으로 향하던 큰길이다.
보은군의 지리적인 특징중 가장 핵심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의 중심이며 먼 옛날 고구려, 백제, 신라가 영토의 변방으로 때론 전쟁터가 되기도 했고 세속을 멀리한 속리산의 깊은 산골짜기는 낙향과 유배지라는 수많은 질곡을 남긴 곳이다.

▲ 피반령 정상 표지석.

이런 연고로 청주에서 보은군으로 향하는 25번 국도는 많은 역사적 흔적을 남겨 놓았다. 옛길을 걸으려면 가덕면 계산리 마을에서 보은군 회인면 오동리로 향하는 길에는 높은 고개가 있다. 그 하나는 피반령, 그 이름만 보아도 예사롭지 않다.
지금은 청원군 가덕면 계산리와 보은군 회인면 오동리의 경계를 이룬 피반령의 정상까지 2차선으로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로 포장되어 대청호를 찾는 외지인들에게 수려한 풍광을 따라 드라이브할 수 있는 도로였지만 불과 20여년전만해도 이 도로는 청주와 회인을 오가는 노선버스가 다니기도 힘든 오지 산길이었다.
지금도 가덕면 계산리 마을에서 피반령 정상에 이르는 산길이 조성되어 있어 옛길을 찾는 이방인들에게는 걷기 좋은 길이다. 이 고개의 이름이 피반령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법하다.
조선시대 지금의 국무총리와도 같은 영의정 자리에 앉아 세 임금을 보필한 오리대감 이원익 선생의 일화가 담겨져 있다. 그는 작은 키와 외소한 외모로 누가봐도 볼품없는 인상으로 경주목사로 부임할 당시 청주에 도착했다. 경주호장이 사인교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신임 사또를 사인교에 태어 반나절을 걸어 지금의 피반령 고개에 다다르자 음력 6월 무더운 날씨로 호장과 가마꾼들 모두 지쳐 호장이 대감의 외모만을 보고 지혜를 시험도 할겸 한번 골려줄 요령으로 사또께 이르기를 “사

▲ 피반령 아래 사근다리.

또, 이 고개는 삼난지방에서 제일 높은 고개이온데 만약 이 고개를 가마를 타시고 넘을 경우에는 가마꾼들이 피곤하여 회인가서 3~4일 유숙하여야 합니다” 하니 사또는 “내 걸어서 고개를 넘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성큼 성큼 걷다보니 뒤따라오던 호장이 히죽거리며 웃으며 따라오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장난을 알아챈 오리대감은 “여봐라, 너희와 내가 신분이 다르거늘 내가 걸어가면 너희들은 양손과 무릎을 발로 삼아 걸어서 고개를 넘어야 하느니라” 하면서 호통을 쳐 고개를 넘도록 했다고 한다. 호장과 가마꾼들이 정상에 다다르자 손바닥과 무릎이 온통 피가 나와서 참아 볼 수가 없었다고 하며 호장은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이 고개를 피발이 되어 넘었다고 하여 피발령, 피반령 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피반령을 넘어 회인으로 오는 길목 고개아래 오동리라는 마을이 있고 이 마을을 지나 한 2km정도 걷다보면 고석리와의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이 갈림길에는 지금도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를 “사근다리” 라고 불린다.
임진왜란 때 원군으로 우리나라에 온 명나라 대장 이여송은 풍수지리에 밝은 사람이었다. 그가 조선의 산천을 보니 정기가 빼어났으므로 훌룡한 인물이 많이 배출될 것이요, 조선에 많은 인재가 나면 대국인 명나라에 큰 화가 미칠 것을 우려해 산맥을 끊어 지맥을 없애고자 산천의 지형을 자른 곳 중 한곳이 바로 피반령 고개라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군사를 동원해 산허리를 끊도록 명령하고 칼과 곡괭이로 산 허리를 자르자 시뻘건 피가 쏟아져 나왔고 그 피는 하천을 따라 흐르기 시작하여 지혈이 끊어진 곳에서 10리나 되는 지점까지 흘러갔다 없어졌다고 한다. 이런 연고로 피가 쏟아진 고개라하여 “피반령” 이라고 부르게 되고 피가 삭아 없어진 지점을 “사근다리” 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회인면 건천리 공태원을 지나면 차령, 수리티재를 만난다. 피반령 못지않은 수리티재는 지명자체에서도 느낄 수 있는 수레와 연관이 있다. 앞서 경주목사로 부임하던 오리 이원익 대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 수리티재에서 촬영한 일출 사진.

피반령에서 호되게 당한 경주호장과 가마꾼들은 회인서 하루를 쉬고 이튼날 보은으로 오는 도중에 지금의 수리티재에 다다르자 대감이 걸어서 넘다보면 자신들은 다시 기어넘으라고 할 것이 무서워 나무를 베어서 수레를 만들도록 한 후 수레위에 사인교를 태운후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이 뒤부터 고개에 수레를 붙혀 “수레티재” 다시 “수리티재” 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하지만 수레의 한자인 차, 한자의 표기가 차령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지금의 지명으로 수리티재라는 지명은 본래 ‘수리’ 는 높은 산이나 봉우리를 뜻하는 고어로 ‘수리티’ 는 높은 고개를 가리키고 있어 오리대감과의 연관성을 그리 깊어 보이지 않는다. 어찌됐든 아주 높은 고개를 넘으면 보은군의 중심인 보은읍이 보이기 시작한다.
최근 수리티재는 일출 및 일몰 특히 해질녘 석양을 바라보는 전망이 일품으로 알려지면서 전국 사진애호가들이 몰려들고 있는 명소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지금도 남아 고개의 이름이 되고 전설이 되어 남아있는 것만 보아도 이  두고개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청주에서 회인을 거쳐 보은으로 향하는 가장 중요한 길인 만큼 많은 애환과 굴곡의 역사를 이야기 해주고 있는 보은의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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