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의 새벽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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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의 새벽하늘
  • 이영란
  • 승인 2017.08.2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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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덥다며 매일 폭염 주의보를 내리고, 변화무쌍한 날씨 변덕에 기상청은 모든 국민들에게 오보만 내린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저녁 헤드라인 뉴스로 논밭이 갈라진 모습이 한창일 때 동생과 함께 법주사에서 이틀 밤을 자는 행운을 얻었다. 도시는 매일 35도 이상으로 열섬현상과 자동차와 아스팔트에서 품어 내는 열기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에 이런 행운을 얻다니 반가운 마음과 행복한 마음이 나를 설레게 했다. 지금까지는 속리산 법주사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둘러보아 이번만은 구석구석 모든 곳을 답사 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리숲을 빠져나가 수정교를 건너고 금강문·천왕문을 차례로 들어서 한 눈에 보이는 법주사 경내는 속리산 자락이지만 평지 못지않게 평탄하고 너르다. 그 너른 터 안에 팔상전과 대웅보전, 원통전 같은 큰 건물과 따로 담장이 둘러쳐진 능인전, 선희궁원당, 강원과 선원, 요사들이 자리 잡았다. 건물들 사이와 마당 곳곳에 쌍사자석등과 사천왕석등, 희견보살상, 석연지 등 석조유물과 철당간, 철확 등이 놓였고, 금강문 서쪽 바위벽에 있는 금빛 찬란한 미륵보살상은 사람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이런 경건한 마당에서 새벽을 맞이하는 것은 모든 중생들에게 평화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게 해 줄 것만 같았다. 마침 보름이었기에 보름달이 미륵불 뒤로 서서히 지며 반짝이는 별을 보는 새벽하늘은 나의 마음을 고요함 자체로 만들었다.
아! 스님의 수행과 고뇌가 묻어나는 33번의 범종소리는 너와 나 그리고 우주가 하나 되는 응집력을 길러 주는 것 같았으며, 맑은 운판소리와 약간은 둔탁한 목어 소리는 처마 끝에 달려 있는 자연의 힘, 바람으로 소리 내는 풍경소리는 어울림의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속리산 법주사는 국보, 보물, 지정문화재 등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문화재들로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부처의 여러 모습을 팔상도로 나타낸 팔상전(捌相殿)의 독특함은 기나긴 역사 속에 여전히 장중한 멋을 간직한 국내 유일하게 남아있는 5층 목탑(塔)이다.
가슴을 맞대고 있는 모습으로 사자의 역동성을 나타내고 있는 쌍사자 석등은 어깨와 허벅지의 근육질 체형과 허리는 잘록하게 표현되어 상·하체의 역동성에 부드러움을 주는 조각으로 석등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하다.
돌로 만든 작은 연못이라는 석연지는 물을 담아두며 연꽃을 띄워 두었다고 한다. 8각의 받침돌 위에 구름무늬를 새긴 사잇돌을 끼워서 큼지막한 돌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은 우리 중생들의 어려운 문제를 모두 안아 줄 것 같은 포근함과 예스러움을 간직하며, 난간 벽의 여러 가지 무늬는 화려함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잠이 덜 깬 우리들이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추어 도는 도량은 문화재와 보물 사이로 나를 인도하면서 사회에서 겪었던 너무나 많은 일들을 마음에서 내려놓고 욕심을 버리라는 청정한 마음을 주었다.
속리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솔바람과 계곡에서 올라오는 안개는 산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무더운 여름에 이불을 불러오는 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다른 사람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는 미물이기에 이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산위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과 계곡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물소리는 법주사의 새벽하늘과 잘 어울리는 한 폭의 산수화이며, 우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오케스트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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