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인의 생일을 찾자, ‘보은군민의 날’은 5월 26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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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인의 생일을 찾자, ‘보은군민의 날’은 5월 26일로
  • 서울 광진예총회장, 시인 장은수
  • 승인 2017.08.1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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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광진예총회장, 시인 장은수
고향의 날 이름만 들어도 고연히 기가 죽었다. 제37주년 제천시민의 날, 청주와 청원이 통합되면서 제2회 청주시민의 날, 제14회 영동군민의 날을 치렀다. 지역 주인인 군민과 출향인, 명예군민, 지역 관계기관 직원 등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발전의 의지를 다지고 희망을 나눴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 광진구는 성동구와 분구되면서 아차산이 사적 234호로 지정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구민의 날’로 정하여 금년이 제22회로 매년 성대하게 행사를 치른다.

보은(報恩)의 유래를 먼저 살펴보자 삼국(三國)시대에 들어와서는 백제(百濟)가 중부지방을 점유하고 신라(新羅)는 남방을 점유하면서 점차 북상하여 양국의 국경 분쟁지로 되어 왔다.
신라 때는 삼년산군(三年山郡)이라 칭하였고 진흥왕(眞興王) 14년(서기 553년) 국경지대인 속리산에 법주사(法住寺)를 창건하여 국력(國力)을 과시했다. 경덕왕(景德王) 16년(서기 757년)에 삼년군(三年郡)이라 개칭했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통일하자 보령(保齡)으로 다시 고치었다가 뒤에 와전(訛傳)하여 보령(保令)이라 칭하게 되었고 현종(顯宗) 9년(서기 1018년)에 상주목에 속하게 하였으며 명종(明宗) 2년 (서기 1172년)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朝鮮)에 접어들어 태종(太宗) 16년(서기 1416년)에 보은(報恩)이라 고치고 현감(縣監)을 두었다. 동 13년에 경상도 상주목에서 충청도에 편입하기에 이르렀고 순조(純祖)때에 군수(郡守)로 올렸으며 고종(高宗) 32년(칙령 제98호(1895. 5. 26공포)에 군(郡)으로 승격 되었다.
보은이란 이름을 처음 부른 것은 1416년이지만, 보은군으로 승격된 날이 1895년 5월 26일이다 그렀다면 매년 5월 26일을 기념일로 정하는 것도 의미 있는 것 같다.

지난 7월 10일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 수산회관에서 열린 원로초청 위안잔치에 서울 경기지역에 많은 원로회원들이 참석해 정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정영기 재경군민회장은 "지난 7월 5일 '양성평등의 날'에 참석해 정상혁 군수, 고은자 의장을 비롯해 김인수 도의원 군의회 의원 등 각 사회단체장들과 여성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보은군의 날'을 만들어 출향인 들과 보은군민이 하나 되고 보은 발전에 원동력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보은군의 힘을 기르자고 제안배경을 설명했다. "일정이 정해지면 우리 재경군민회가 앞장서서 화합에 장을 만들자"고 하자 참석한 재경보은군민회 회원들도 박수를 치며 뜻을 같이 했다.

보은 600년을 기념해 타임캡슐을 묻기도 했고, 보은 유래비도 세웠다. 그러나, 여론만 들끓지 그 누구도 ‘보은군민의 날’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가에 대해 구체적 논의를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행사를 시행되게 되면 출향인들도 기뿐 마음으로 고향보은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보은군과 보은군의회가 협력해 관련조례를 만들어 축제행사로 시행하길 바란다. 전국의 보은출신들에게 애향심을 고취시키고 보은발전을 위해 뜻을 모으도록 관심과 참여를 확대했으면 한다. 대추축제 때 ‘출향인의 날과는 달리 별도로 ‘보은군민의 날’ 제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20대 국회에서 추진하는 고향세에 대한 입법활동은 주로 농촌지역의 국회의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추진하고 있으므로 법률로 채택될 것으로 판단된다.
보은군 인구를 출향인사와 합하여 30만이 보은군민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다소 늦었다 생각되지만 ‘보은군민의 날’ 제정을 위하여 출향인사들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보은군민의 날’ 제정은 보은인 화합의 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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