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漢學)은 보은의 정신, 특화시켜야 할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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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漢學)은 보은의 정신, 특화시켜야 할 학문”
  • 박진수 기자
  • 승인 2015.06.25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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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사람-성균관유도회 보은지회 정기형(74) 회장
보은은 한학의 고장이다. 대곡 성운선생을 비롯 많은 유학자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 보은이다. 동네 서당에서 6년간 배운 한학(漢學)이 삶의 지표가 되어 보은의 한학 선생님으로 불리우는 성균관 유도회 보은지회 정기형 회장님은 만났다. 그가 기억하는 관선정에 대한 기억과 젊은 세대일수록 한자, 한문의 가치가 사라지고 있고 인성교육마져 소외되고 있는 시점에 한학교육에 대한 열의로 가득한 정 회장님의 한학의 중요성과 보은지역과의 한학과의 관계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한문, 한자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성균관유도회 보은지회 정기형 회장.
신학문을 쫓아가던 시절 한학, 구학을 배우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신학문에 대한 교육기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수십리를 걸어서 학교를 다니고 학교와 거리가 멀면 소학교 졸업이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시절에 정기형 회장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보은농고에 입학해 지금의 장안면 봉비리에서 걸어서 학교를 등교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며 “당시만해도 초등학교는 물론 대부분의 동네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신학문을 배우기 보다는 농사일이나 하고 동네 서당이나 다니는 것만으로도 배움의 전부였다” 고 말하고 있다.
당시 고등학교 입학후 쉽지 않은 등.하교를 지켜보던 부친이 중학교까지 신학문을 배웠으니 이제 한학 공부를 권유로 관선정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정 회장은 “6년 동안 관선정 서당에 다니면서 동몽선습을 시작으로 통감, 사서등을 익히게 되었고 일재 허약선생을 비롯 세분의 스승으로 모시며 한학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다” 며 “한학을 배우던 관선정은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선병국 가옥 군부대에 위치해 있던 관선정은 아니었지만 관선정의 학풍을 그대로 이어보고자 했던 선정훈씨의 뜻이 담겨져 엄격한 서당, 훈육으로 한학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보은의 관선정은 한학의 맥을 이은 곳
정기형 회장이 말하는 관선정(官善亭)은 한마디로 일제강점기 사라질 위기에 있었던 한학교육기관으로 유일한 곳이었다고 한다.
정 회장은 “관선정은 지금의 선병국 가옥 솟을대문 남쪽 약 300m 지점에 1926년에 창건해서 저명한 스승을 초빙하여 1944년까지 수학을 하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인하여 관선정이 철거됐다” 며 “그후 1945년 관선정을 다시 경북 서령으로 옮겨서 복원 수학하였고 또 다시 상주 화북면 동관리로 옮겨서 1951년까지 수학을 하던 제법 큰 교육기관이었다” 고 한다.
당시 1926년부터 1951년까지 수학(受學)과 학생은 수백명이 될정도로 한학 교육기관으로는 제법 큰 규모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본래 ‘착한 사람들끼리 모이면 좋은 본을 받는다’ 라는 뜻을 지닌 관선정이라는 35평 규모의 서당으로 이곳에서는 저명한 학자인 겸산 홍치유(洪致裕) 자(字)는 응원(應遠), 호(號)는 겸산(兼山), 1895년(고종32) 명성왕후가 일본인에게 살해되자 이강년이 영남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그의 종사관으로 활약하였고 한일합방후 보은을 중심으로 배일운동과 계몽운동을 주도하였으며 그의 저서 「겸산집(兼山集)」이 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 회장은 “관선정은 홍치유 선생 뿐만아니라 설주 송운해, 이지강 선생 등이 관선정의 정신을 지킨 스승들이었으며 관선정이 쏟아낸 재주 있는 인재만도 천여명이 되고 추사의 맥을 이은 임창순 선생을 비롯, 나준, 변시연 등이 모두 관선정의 품안에서 학문을 완성한 인물들이 있다“ 고 말하고 있다.

▲ 지금의 장안면 선병국 가옥 맞은편에 자리했던 관선정의 기록이 담긴 관선정 기적비.
민족지도자 청명 임창순 선생이 공부하던 곳 관선정
정 회장이 말하는 관선정은 “1926년부터 일제에 의해 강제로 문을 닫을 때인 1944년까지 온 나라 수백 명의 젊은이들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무료로 제공하고 공부하는 데 따르는 돈을 모두 사재로 충당하였다니 나라에서도 못할 일을 하던 곳” 이라며 “관선정은 당시 일본이 강제 병합으로 한국인들의 역사와 민족교육이 서서히 말살되는 가운데서도 일제의 식민지 학교교육이 아닌 전통 유학을 교육시켜 은연중에 민족정신을 북돋우는 등 우리의 전통문화계승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이곳에서 한문학의 주류를 형성한 청명 임창순 선생이 대표적인 인물” 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 회장은 “청명 임창순 선생은 한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로서 재야에서 많은 후진을 양성하면서 우리 것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으로 금석문·서예·그림·서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연구 활동한 한학자로 통일 사회운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던 분” 이라며 “1973년 관선정기적비(觀善亭紀蹟碑)를 세워 관선정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관선정은 안타깝게도 한국전쟁 때 불타고 지금은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다” 며 “관선정의 면학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관선정은 복원되어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보은의 한학선생으로 남고 싶다"
정기형 회장은 한학 교육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기가 지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학을 통해 인성교육을 함양하고 충과 효를 바탕으로한 예절교육등 한학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정 회장은 한학교육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작게는 주민자치센테의 프로그램으로 크게는 복지관 평생교육 강좌로 한학 교육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정 회장은 “한학은 보은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학문” 이라며 “대곡 성운 선생을 비롯 많은 유학자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바로 보은이라는 사실에 타 지역보다 한학을 통해 지역주민의 인성과 화합을 위한 교육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 고 강조하고 있다.
현재 성균관유도회 보은군 지회장을 맡고 있는 정기형 회장의 바람은 한학 교육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모아 한학 교육을 위한 연구소 및 지속적인 한학 교육을 통해 젊은 한학자들이 보은에서 활동하기를 원하고 있다. 70대 중반의 연령에도 한학 교육을 위한 열의 만큼은 멈출 수 없는 기세였다.
마지막으로 정 회장은 “옛것이라고 쓰기 힘들다고 찾지 않고 배우지 않으면 민족의 정신마져 잃게 된다” 는 말이 여운으로 남았으며 온 세상이 밝은 것만을 찾아갈 때 어두운 곳을 밝히고자 했던 관선정과 해방된 이후 사재를 털어가며 없어진 관선정의 한학 교육의 열의를 잇고자 선정훈 선생의 한학에 대한 열의가 그대로 베어나고 있었다.
/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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