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복천암 삼세불도
석가, 아미타, 약사여래의 삼세불도
상태바
법주사 복천암 삼세불도
석가, 아미타, 약사여래의 삼세불도
  • 황선식 시민기자, 학예사
  • 승인 2013.11.14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시보는 보은문화재(17)
오랜만에 맛보는 파란 가을하늘과 황금빛 들녘을 지나 가로수길 옆으로 꽃잎처럼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을 살포시 밟아본다. 어느덧 속리산의 가을은 더욱 깊어만 가고 오리숲 언저리에는 늦가을의 정취가 묻어나고 있다.
이번에는 속리산의 암자(庵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바로 법주사 복천암(法住寺 福泉庵)을 찾아가 보고자 한다.
속리산 암자를 대표하는 복천암(福泉庵)은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작은 사찰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주사사적기(法住寺事蹟記)에 따르면, 복천암은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창건되어 조선시대까지 매우 많은 중수가 이루어졌음이 기록되어 있다. 복천암 중심 건물인 극락전(極樂殿)에 있는 후불탱화(後佛幀畵)를 살펴보면, 1909년 승려인 금어, 청응목우, 천일, 성엽 등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석가여래, 아미타여래, 약사여래를 그린 삼세불도다. 협시로는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인데 옷을 백색과 청색으로 구별하여 채색하였고, 지물로는 작은 병과 연화가지를 들고 있다.
이 복천암 삼세불도는 389㎝(세로)×286㎝(가로)의 규모이다.
또한 이 복천암에는 삼세불도 외에도 복천암 신중탱화(神衆幀畵)도 소장되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탱화는 즉, 불화(佛畵)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불화란, 불교회화(佛敎繪畵), 즉 불교그림을 말한다. 넓은 뜻으로 불교와 관련된 모든 그림을 말하며, 좁은 뜻으로는 불상이나 보살상처럼 경배의 대상이 되는 그림을 말한다. 이 불화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다. 다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화로 아잔타석굴 불화(기원전 2세기∼기원후 7세기경)가 잘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돈황석굴, 운강석굴, 용문석굴 등이 있는데, 보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온도 변화나 습기의 변화가 적고 무엇보다 오랜 세월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가 들어온 4세기경부터 불상과 함께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연적 물리적 환경, 전쟁 등으로 인해 사찰이 소실되거나 하면서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대부분, 현존하는 작품들은 대개 조선후기 것들이다.
한편, 불화는 제작재료나 형태에 따라 벽화(壁畵)와 탱화(幀畵), 경화(經畵)등으로 구분된다. 그 중에서도 종이, 비단 등에 불교 경전(經典)내용을 그려 벽면에 걸도록 만들어진 탱화(幀畵)가 우리나라 불화의 주류를 이룬다. 특히, 조선중기에 이르면 크게 유행하게 되는데, 불상 뒤에 안치한 후불탱화나 연등회 등 야외행사에 괘불석주에 걸어 사용하는 괘불(掛佛)탱화가 있다.
탱화는 그림 내용의 품격에 따라 상단탱화(부처, 보살이 그려짐), 중단탱화(나한, 사천왕 등 신중이 그려짐), 하단탱화(망자의 위패를 모신데 걸어두는 그림)로 나눌 수 있으며, 상단탱화도 걸어두는 전각(殿閣)에 따라 석가여래탱화, 아미타불탱화, 비로자나불탱화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황선식 시민기자, 학예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