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마당에는 감나무가 한그루 있고 그 아래에 빈 의자 하나가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다. 시모님 생전에 마당에 잡초를 뽑다가 잠시잠깐 앉아서 숨을 돌리시던 휴식처이다. 종종 땀을 식히느라 엉덩이만 간신히 걸치고 앉아있던 나무의자다. 여름 폭우에 이리저리 데굴데굴 구르다가 지금은 흙투성이가 되어 아무렇게나 쓰러져 보잘것없는 존재지만, 올 여름에도 감나무 아래서 달콤한 오수를 즐기라고 기꺼이 온 몸을 내어주던 고마운 의자다. 또 친가에 가면 마당에 커다란 목련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그 목련나무 아래에 역시 빈 의자 하나가 주인을 잃은 채 우두커니 자리하고 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아버지가 앉아계시던 허리둘레가 둥실둥실 널찍한 플라스틱 의자 하나가 외롭게 버티고 있다. 두 의자의 주인은 가고 없지만, 누가 뒤를 이어 제발 앉아주기를 바라는 모습으로 쓸쓸히 자리하고 있다. 다시 누군가 저 의자에 앉아 봄을 기다리고 오수도 즐기고 가을 하늘도 올려다 볼 것이 분명하다
해마다 새순이 돋아나면 두꺼운 겨울외투를 개키며 달려오는 봄에 새 희망과 소망을 걸어보았고, 녹음이 짙어지면서 긴소매가 답답해지면 잠시잠깐 걸쳤던 봄옷들이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였고, 지금 이 옷들도 잠시잠깐 걸쳤다 벗으면 낙엽 휘날리던 동구 밖 텅 빈 길에 하얀 눈이 쌓일테고, 우리는 머지않아 다시금 겨울외투를 꺼내 입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철지난 옷정리를 수없이 반복하다보니 끝내는 마침표 하나 조용히 찍는 날이 서서히 다가오더라고, 날마다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르는 물위의 부평초처럼 그렇게 흔들리며 흘러가는 것이라고 일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잘 다듬어진 빈 의자 하나 누구에게 남겨주기 위하여 오늘도 이렇게 분주한 일상인가 보다. 다시 철지난 옷 박스를 층계 아래 다락방으로 밀어 넣고, 아름다운 이 가을에 풍요로운 황금들판을 마련해 놓으신 위대한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겠다. 흙투성이 빈 의자 하나 윤기있게 닦아놓고 첫눈을 기다려야겠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의자 주인들의 여정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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