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의자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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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의자를 바라보며
  • 회남초등학교 교감 김종례
  • 승인 2013.10.3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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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마음을 연다는 시월도 어느덧 마지막 날이다. 청명하기 그지없는 높은 창공은 에메랄드, 쪽빛, 호수로 표현되기 안성맞춤인 요즘이다. 감나무 꼭대기에 걸려있던 가을 햇살이 황금들판을 어루만지며 성숙의 과정을 일깨워주는 요즘이다. 일년내내 층계 아래 다락방 속에 갇혀서 가을햇볕을 기다리던 추동복 옷가지들에게 숨통을 틔워준다. 훌훌 털어서 마당 빨랫줄과 나뭇가지위에 노스탈쟈의 깃발처럼 펄럭펄럭 널기도 하고, 평상 가득 늘어놓고 철지난 옷을 정리 해본다. 오래전 어머니께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시던 일을 이젠 해마다 내가 재연하고 있다. 바지랑대 끝에서 짝을 기다리던 고추잠자리 한마리가 쏜살같이 날아와 아는 체 하더니, 대책도 없이 추락하는 감나무잎과 춤사위를 벌이는 전형적인 가을이다. 점점 희미해져 가는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꽃잎도 나뭇잎도 바람 부는대로 몸을 맡기고 제 영혼과 추억들을 어디론가 멀리멀리 실어 보내려는지 사뭇 흔들리는 중이다. 모두가 회한의 재들을 허옇게 뿌리며 안으로만 사그라들고 있는 중이다. 한줄기 소슬바람에도 이별의 왈츠를 추어대며 머지않아 제 씨앗들을 대책도 없이 발아래 우수수 쏟아놓겠지.... 한 줌의 검불때기로 사라져가는 자연과 소멸의 섭리를 일러주면서....
우리집 마당에는 감나무가 한그루 있고 그 아래에 빈 의자 하나가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다. 시모님 생전에 마당에 잡초를 뽑다가 잠시잠깐 앉아서 숨을 돌리시던 휴식처이다. 종종 땀을 식히느라 엉덩이만 간신히 걸치고 앉아있던 나무의자다. 여름 폭우에 이리저리 데굴데굴 구르다가 지금은 흙투성이가 되어 아무렇게나 쓰러져 보잘것없는 존재지만, 올 여름에도 감나무 아래서 달콤한 오수를 즐기라고 기꺼이 온 몸을 내어주던 고마운 의자다. 또 친가에 가면 마당에 커다란 목련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그 목련나무 아래에 역시 빈 의자 하나가 주인을 잃은 채 우두커니 자리하고 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아버지가 앉아계시던 허리둘레가 둥실둥실 널찍한 플라스틱 의자 하나가 외롭게 버티고 있다. 두 의자의 주인은 가고 없지만, 누가 뒤를 이어 제발 앉아주기를 바라는 모습으로 쓸쓸히 자리하고 있다. 다시 누군가 저 의자에 앉아 봄을 기다리고 오수도 즐기고 가을 하늘도 올려다 볼 것이 분명하다
해마다 새순이 돋아나면 두꺼운 겨울외투를 개키며 달려오는 봄에 새 희망과 소망을 걸어보았고, 녹음이 짙어지면서 긴소매가 답답해지면 잠시잠깐 걸쳤던 봄옷들이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였고, 지금 이 옷들도 잠시잠깐 걸쳤다 벗으면 낙엽 휘날리던 동구 밖 텅 빈 길에 하얀 눈이 쌓일테고, 우리는 머지않아 다시금 겨울외투를 꺼내 입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철지난 옷정리를 수없이 반복하다보니 끝내는 마침표 하나 조용히 찍는 날이 서서히 다가오더라고, 날마다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르는 물위의 부평초처럼 그렇게 흔들리며 흘러가는 것이라고 일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잘 다듬어진 빈 의자 하나 누구에게 남겨주기 위하여 오늘도 이렇게 분주한 일상인가 보다. 다시 철지난 옷 박스를 층계 아래 다락방으로 밀어 넣고, 아름다운 이 가을에 풍요로운 황금들판을 마련해 놓으신 위대한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겠다. 흙투성이 빈 의자 하나 윤기있게 닦아놓고 첫눈을 기다려야겠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의자 주인들의 여정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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