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
통일신라시대 석조기술의 묘미를 표현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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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
통일신라시대 석조기술의 묘미를 표현한 작품
  • 황선식 시민기자, 학예사
  • 승인 2013.10.24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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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보은문화재(14)
어느덧 산과 계곡은 울긋불긋한 옷을 갈아입고, 은은한 국화향기 가득한 시절이 왔다. 그래서인가! 선선한 가을바람과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계절은 어느새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 내리고, 온도가 더 낮아지면 첫 얼음이 얼기도 한다는 상강(霜降) 언저리를 지나고 있다.
참으로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여서 오랜만에 높은 하늘과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법주사 산책을 나섰다. 경내를 둘러보다 청동대불 위쪽에 서 있는 보살상과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이다.
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은 현재 청동대불과 팔상전 위쪽에 자리잡은 원통보전 옆으로 보호각을 마련하여 세워졌다. 높이는 213cm이며, 보살상의 얼굴부분과 머리 위 그릇(향로) 형태의 지물 뒷부분, 대좌가 일부 결손된 상태이고 손과 발에는 보수 흔적이 남아있다.
또한, 울퉁불퉁하게 새겨진 지대석과 그 위로 네모진 돌이 얹혀있는 두 개의 대좌 위에 서있는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하단 지대석과 상단 그릇 형태의 지물만 별개의 석재로 조각되었고, 보살상의 머리부터 대좌까지 한 덩어리의 돌로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특히, 얼굴 아랫부분은 파손되었으나, 부릅 뜬 눈과 곱슬머리를 표현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어깨에는 얇은 천을 걸쳐 입은 듯 표현하였고, 허리띠를 사용하여 무릎까지 오는 짧은 바지를 입었으며, 손목과 발목에는 장신구를 착용하였다. 이 보살상이 지닌 형태적 상징적 특징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서 장방형 받침이 있는 그릇(향로) 형태의 지물을 들고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상(像)의 명칭과 관련하여 몇 가지 설이 있다. 먼저,『法住寺事蹟記(법주사사적기)』에 적힌 경내의 전각과 유물 목록가운데‘喜見菩薩石像一座(희견보살석상일좌)’라는 기록에서 비롯되어 희견보살(喜見菩薩)로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석가모니의 발우(鉢盂: 승려들이 식사할 때 사용하는 식기)와 가사(架裟: 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입는 승려의 옷)를 미래의 미륵부처에게 전달해준다는 가섭존자(迦葉尊者: 석가모니의 제자)로 추정하는 설이 있다. 또한, 근래 이 상을 연구한 논문이 있는데, 당대(唐代:중국 당나라) 곤륜노(崑崙奴:동남아시아 노예)의 영향을 받았고 그 의미는 향을 공양하는 공양자로 보는 설이다.
이처럼 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 조성의 제작 유래에 대한 부분은 명확하지 않지만, 향로를 받쳐 든 전체적 구성미나 세부 조각기법이 독특한 통일신라시대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황선식 시민기자,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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