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노인대학 현장학습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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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노인대학 현장학습 나들이
  • 조순이 실버기자
  • 승인 2013.10.2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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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가을 풍경이 아름다운 계절에 보은노인대학(학장 김광태) 23기 어르신들이 현장학습을 떠나기 위해 노인대학 강당으로 모였다.
50여 명의 어르신들과 담당 직원 모두 관광차에 올라 전주로 향했다.
전주에 당도하여 첫 번째로 덕진연못수생 생물을 관람했다. 때가 늦어 연꽃은 다 져버리고 초록색 연꽃잎이 우리들을 반겨주었다. 그 넒은 연못을 한바퀴 돌고 다시 차에 올라 점심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두 번째 관람은 조선 태조 어진을 모신 현존하는 유일한 태조 어진박물관을 관람했다. 태조 평상 상시 집무복인 익선관과 청룡포 차림의 전신상 어진이다. 태조는 키가 크고 몸이 곧바르며 귀가 아주 컸다고 한다. 전주는 태조의 본향으로 그 선대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이를 기념해 1410년(태종10) 태조 어진을 전주에 봉안하였으며 1872년 구본이 낡아 박기준, 조중목, 백은배 등 8인의 화사가 새로 모사했다고 한다.
태조에서 철종대까지 25대 임금의 초상화 중에서 현존하는 어진은 태조, 영조, 철종 뿐이다. 세종과 정조 어진은 실제 모습이 아니라 추상하여 그린 것으로 국가에서 공인한 표준 영정이다. 고종과 순종은 사진을 보고 모사한 것이라고 한다.
전주에서는 우리나라 전통가옥을 흔히 볼 수 있다. 전주한옥마을은 집이 700여 채가 있는데 이중 540여 채가 한옥이라고 한다. 한옥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니 나무와 흙 등을 써서 지은 친환경 집이라고 한다. 전주한옥마을에 가면 오랫동안 한옥을 가꾸고 지키며 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이 마을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1905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일본인이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특히 전주는 주변에 곡창지대가 많은 풍요로운 땅으로 일찍이 견훤이 후백제의 수도로 삼은 곳이라고 한다. 전주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처음에는 성 밖인 전주천변에 주로 살았으나 성문들과 성벽을 허물어 자연스럽게 성안에 들어와 일본식 집을 짓고 상권을 하나씩 잡아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해방될 때까지 상권을 장악하여 집터와 상권을 빼앗긴 사람들의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1930년 조선 사람들은 일본인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교동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짓고 살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해 마을을 이룬 것이 바로 지금의 전주한옥마을이라고 한다. 일종의 항일 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마을 주변에는 일본이 유일하게 철거하지 않은 풍남문이 남아있고 일본식 가옥들도 제법 남아있다.
1908년부터 짓기 시작해 1931년 완공된 전동성당은 아름답고 웅장한 서양식 근대 건축물이다. 이처럼 한옥마을 일대는 조선시대 풍남문 근대식 한옥과 일본식 가옥, 서양식 성당 그리고 현대식 집과 상가 건물들이 모우 어우러져 살아있는 근현대 건축박물관이기도 한다.
한옥마을을 찾으면 오목대라는 곳이 유명하다. 오목대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장군이던 시절 왜구를 물리치고 승전 축하잔치를 벌인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동서양과 근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존하는 유일한 태조 박물관을 관람하고 우리들은 관광차에 올라 대추고을 보은으로 돌아왔다.
/조순이 실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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