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온통 황금물결로 출렁대고 경순대왕의 역사적 의미를 일깨우기 위한 행렬이 펼쳐졌다.
행사장에는 후손들이 줄을 지어 모여 있고 신라 경순왕의 역사적 왕조실록이 실린 책자를 받고 지역별로 자리했다.
1904년 화승 이지춘이 그린 일월관을 쓴 경순대왕, 현재 숭혜전에 보관중인 어진은 모사본이며 원본은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고 한다.
경순대왕의 영특한 기상은 하늘을 없신 여길만 하고 아름다운 문장은 땅을 진동시킬만한 제주가 있었다고 한다.
생각하건데 경순대왕은 대통을 근심하여 왕기를 심고 임금의 자리를 내놓으며 백성을 구한 것이다. 이에 “중추를 맞이하여 삼가 맑은 술과 오곡백과 등 여러 제수로써 제향을 올리니 바라옵건데 흠향하시옵소서”라는 축문이다.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귀순하고 복종한 것이 비록 얻은 것이 없고 왕으로서의 책무성이 없다고 할지라도 정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양국한 일은 현명하며 다음과 같은 역사적 의의를 가졌다고 보겠다.
첫째, 진행을 피함으로 인적, 물적 피해가 없었으며 둘째, 고려 왕건에게 평화적으로 나라를 넘겨주어 인물 문화가 그대로 고려에 계승되었고 셋째, 고려 왕건으 무사로서 다스리는 문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였기에 신라 문신이 고려에 그대로 계승되었고 또한 이어 조선에서도 고려의 문신을 그대로 등용하였다.
우리 민초들이 일반상식으로 쓰는 말도 욕심도 벗어 놓고 항시 배려하는 마음이 절실하다. 경순대왕은 아무리 피로 저항해도 강토는 날로 줄고 하니 손해 이상의 것을 버리고 의의에 길로 백성을 구하고 현명한 판단으로 후손들에게 기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흥섭 실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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