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올해는 예년보다 열흘 정도 일찍 찾아온 중추가절(仲秋佳節)이어서 풍성한 가을들판의 수확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 더구나 경제난의 여파도 한몫을 하여 한가위의 여유로운 정취는 다가올 낌새조차 없다. 물가가 워낙 비싸 진설용품도 제한해 사야할 정도다.
추석날 아침 조상을 기리는 진설을 차례상이라고 한다. 차례(茶禮)는 한자의 뜻 그대로 조상에게 차를 올리는 의식이다. 즉 조상에게 달 계절 해가 바뀌고 새로 찾아옴을 고하는 다례의식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중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음식을 올리는 의례가 됐다. 음식은 설날에는 떡국, 추석에는 송편이 기본이다. 더하여 과일 포 탕 식혜 산적 어적 나물 전 편 국 메 등을 차린다.
차례나 제사 때, 음식을 법식에 따라 상 위에 차려 놓는 것을 진설이라고 한다. 가문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진설의 기본은 홍동백서(紅東白西)다. 붉은색은 오른쪽, 흰색은 왼쪽이다. 당연히 진설상의 위치는 항상 북향이다.
진설상에 올릴 제수를 준비할 때는 몸을 깨끗이 하고 청결한 기구를 사용한다. 과일 중 복숭아와 생선 중 삼치 갈치 꽁치 등 끝에 ‘치’자가 든 것은 쓰지 않는다. 고춧가루와 마늘양념을 하지 않으며 면은 건더기만 사용한다. 메 탕 전 적 면 편과 같은 음식은 식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수는 의례가 끝나기 전에 먼저 먹으면 안 된다.
진설상에 오르는 제수에도 조상의 은덕을 은연중 바라는 나름의 의미가 숨어있다. 진설에서 으뜸으로 치는 제수는 바로 ‘대추’다. 가문에 ‘왕’이나 ‘성현’이 나오게 해 달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대추의 겉 문양이 태양계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밤은 세 톨을 한 송이로 치고 껍질을 벗겨 올리는데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뜻한다. 감은 씨가 여섯 개로 육조 판서를 의미하며 사과는 집안의 화목과 사랑을 기원하는 뜻을 갖고 있다. 배는 지혜와 깨달음, 호두는 명석한 자손의 탄생을 간구하는 것이다.
속설에 몹시 가난하여 진설상을 제대로 못 차릴 경우에는 어탕(魚湯) 육탕(肉湯) 채탕(菜湯) 만이라도 올리라고 했다. 그마저도 어려우면 이른 새벽 우물에서 길은 정화수 한 사발을 정성껏 떠올리라고 했다. 형식적인 겉치레 상차림보다는 소박하더라도 마음담긴 진설상이 오히려 낫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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