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협회·문학아카데미 수강생 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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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협회·문학아카데미 수강생 문학기행
  • 이흥섭 실버기자
  • 승인 2013.07.18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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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문인협회와 문학아카데미 수강생들이 이육사 문학관, 도산서원 등을 탐방하며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12일 보은문인협회 회원들과 문학을 사랑하는 문학아카데미 수강생들이 함께 보은문화원 마당에 모여 안동으로 문화탐방 길에 나섰다.
이육사 문학관에 도착하여 진열된 작품들을 일일이 관람하고 영화관에서 이육사 시인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시인이며 독립운동가 이고 호는 육사 본명은 원록이다. 양반의 고장 안동 출생으로 조부 치헌 이중직에서 한학을 배우고 도산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결혼 후 백학학원에서 9개월간 교편을 잡다가 이듬해 4월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
그곳에서 조선인 핍박을 목격한 후 귀국하여 대구에서 조양회관을 중심으로 문학활동을 했다. 1926년 광동성 광주 중산대학에서 이활 이라는 이름으로 혁명동지회에 참석해 조직활동을 하여 1927년 여름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1년 7개월간 옥고를 치루고 그 때의 수인번호를 따서 이육사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후 중외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첫 시말을 조선일보에 발표했고 1931년에는 대구 격문사로 다시 수감되었다. 이듬해 북경과 남경에 머물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의열단에서 설립한 조선혁명군사 정치간부 학교를 1기로 졸업했다.
그리고 1943년 중국으로 갔다가 귀국해 6월에 북경으로 압송되어 이듬해 1월 16일 마흔의 나이로 북경주재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청렴결백에 엄격한 정신으로 목숨 받쳐 싸운 이육사의 정신을 되새겨 본다.
두 번째로 퇴계 선생의 가르침이 남아 숨쉬는 도산서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옛 향기가 남아 풍기는 듯한 도산서원 퇴계 이황 선생은 연산군 7년 1501년에 돌아가셨다.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단양군수, 풍기군수, 공조판서, 예조판서, 우찬성 대제학을 지냈으며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70여회나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 연구, 후진양성에 힘써 이 나라 교육 및 사상의 큰 줄기를 이루었고 만대의 정신적 시표가 되었다.
선생은 명종 16년 1561년에 도산서당을 세웠고 시후 4년 만인 선조 7년 1574년에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으며 선조 임금은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의 현판을 지었다.
말로만 듣던 퇴계 이황 선생의 손때 묻은 도산서원을 관람하니 옛 향기가 가슴을 채우는 듯한 감정이었다.
조선시대 명인들의 뜻 깊은 학문을 가슴에 새기며 보은으로 돌아왔다.
/이흥섭 실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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