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공간 암시와 세속과의 경계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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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공간 암시와 세속과의 경계 상징”
  • 황선식 시민기자, 학예사
  • 승인 2013.07.18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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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당간지주(幢竿支柱)
어느덧 작은 더위라 불리며, 본격적으로 더위진다고 하는 소서(小暑)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사찰에 들어서면 또는 그 주변에 가면 늘 그 자리에 우뚝 서있는 문화재, 바로 당간지주(幢竿支柱)에 대해서 살펴볼까 한다.
법주사 당간지주는 금강문과 천왕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좌측에 높게 솟아있는 철제 기둥이다.
이 당간지주는 고려 1006년(목종 9)에 건립 되었으나 철주(鐵柱)만 1866년(고종 3)에 훼손(당백전이라는 화폐 주조를 위해 사용됨) 되었다가 순종 때(1910년) 복원된 것이다. 법주사 당간지주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현재까지 보전되고 있다. 다른 당간지주와 달리 석재 기단부와 석조지주의 규모가 크고 짜임이 뛰어나며 높이는 22m이다.
그러면 당간지주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알아보자.
당(幢)이란 본래 사찰 마당이나 입구에 꽂는 깃발을 의미하며 기도회나 법회 등의 의식(儀式)이 있을 때 당간 정상에 매달던 것이다. 그리고 간(竿)은 이 깃발을 고정하는 나무기둥(대나무 등) 즉 장대를 의미하며 이 당간(幢竿)을 지면에 고정시키기 위해 받치는 지주(支柱)를 당간지주라고 한다.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사찰에서 가람구성의 필수적인 요소로 사찰입구에 세워졌다. 왜냐하면 사찰입구에 배치함으로써 불가(佛家)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인식을 유도하여 신성한 공간에 대한 암시와 세속적인 세계와의 경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찰들이 조선시대를 지나면서 폐허가 되었지만 당간지주가 서 있어 당시 사찰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으며 사찰이 남아있지 않아도 당간지주의 배치를 통해 대략적으로나마 가람배치를 추정할 수 있다.
당간지주의 조성 재료는 대부분 돌(石)이지만 철재·금동재·목재인 경우도 있다. 재료의 특성상 천(布)이나 목재(木) 또는 종이(紙)를 재료로 만들었던 당(幢)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돌로 만들었던 당간지주는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공주 갑사 철당간, 안성 칠장사 철당간,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 김제 금산사당간지주 등이 있다. 당간지주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사찰 내에서 당을 높이 걸어 그 일대가 신성 지역임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였는데, 이런 점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솟대와도 그 의미가 통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그 생김새가 당간지주와 비슷하여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유물이 있는데 바로 괘불석주(掛佛石柱)다. 이 괘불석주는 사찰에서 연등회나 팔관회 같은 법회를 여는 경우 즉 야단법석(野檀法席: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의 말씀을 듣는 자리)을 할 때 법당(일반적으로 대웅전) 앞 기둥에 당(幢)대신 괘불, 즉 불화(佛畵)를 매달기 위한 시설물이다. 이 괘불석주가 당간지주와 구별되는 점은 위치가 사찰 입구가 아닌 법당 앞이고 당간지주에 비해 크기가 작다는 것이다.
/황선식 시민기자,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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