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마애불의 극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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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마애불의 극치”
  • 황선식 시민기자, 학예사
  • 승인 2013.06.20 0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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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은 보은문화재(4)
법주사 경내에는 추래암(墜來巖)이라고 알려진 거대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 앞면에는 오래전 어떤 장인(匠人)이 정성 들여 새겨놓은 마애불(磨崖佛)이 조각되어 있다. 이 마애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지 천천히 발걸음을 추래암으로 옮겨보자.
먼저, 마애불의 의미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마애불은 절벽의 거대한 바위 면이나 돌에 선각(線刻)이나 양각(陽刻: 돌출)기법을 활용하여 어떤 주제나 사상을 담아 새긴 불상(佛像)을 말한다. 그 유래는 기원전 인도의 석굴사원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5세기경부터는 자주 제작되었고, 인도 북서부지역(간다라), 중국 서쪽지역(서역)을 거쳐 중국 각지의 수많은 석굴에 많은 마애불들이 조성되었으며, 인도와 중국의 마애불은 우리나라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태안 마애불, 서산 마애불, 예산 석주 사방불 등이 만들어 졌고, 통일신라 때부터는 전국적으로 수많은 마애불들이 조성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양질의 화강암 지대가 전국적으로 분포되었기에 대부분의 마애불은 화강암 절벽이나 큰 바위에 새겨졌으며, 다른 석재(石材)에 비해서 자연재해 등에 오래 견디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대표적 마애불에는 충주시 가금면 마애불상군, 태안과 서산의 마애삼존불상, 경주 칠불암 마애삼존불, 북한산 승가사여래좌상, 관악산 마애미륵불좌상 등이 있다.
그러면,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자. 이 불상은 활짝 피어있는 연화좌에 걸터 앉아 두 발을 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미륵불의상(彌勒佛倚像)임을 알 수 있다. 바위 옆에는 지장보살로 추정되는 불상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전체적인 불상의 모습으로 보아 법상종(法相宗: 미륵신앙)사찰인 법주사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 본래 불화(佛畵)를 보고 조각된 듯 보이며, 불상을 조각한 선(線)이 매우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머리쪽을 보면, 나발(작고 촘촘한 소라모양의 머리칼)이 표현되었고 위쪽에는 육계(둥근 상투)가 돋았으며, 그 가운데에 반달 구슬장식 등 특히, 머리장식을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둥글고 온화한 얼굴에는 크고 긴 코와 둥근 눈썹 뚜렷한 눈두덩이와 두꺼운 입술이 잘 표현되어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왔고 삼도(목에 있는 3줄의 주름)는 두껍고 진하게 표현되어 고려 초기 마애불의 특징적인 양식을 잘 보여준다. 수인(手印: 손모양)은 설법인으로 오른손은 손바닥을 보이며 동그라미를 만들고 왼손은 가볍게 오른손을 받치고 있다. 법의(法衣)는 왼쪽 어깨에만 걸친 형태로 가슴에서 다리 사이로 흘러내려 아름다운 곡선을 이룬다. 또한, 화사한 연꽃 위에 앉은 자세와 커다란 연꽃잎 위에 발을 올려놓은 모습은 매우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 마애불의 오른쪽 바위면에 짐 실은 말을 끄는 스님과 소, 그 밖에 여러 형상의 스님 모습 등이 조각되어 있는데, 법주사 창건설화에 나오는 의신조사(義信祖師)가 불경을 실어오는 모습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주 오래전, 추래암에 새겨진 미륵부처의 모습(의자에 걸터앉듯 두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는)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드문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 마애불 가운데에서도 조각 수법이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황선식 시민기자,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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