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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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새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3.05.2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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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가득한 오월도 어느새 하순에 접어들었다. 가버린 봄의 서러움을 안고 모란이 뚝뚝 떨어져 지고 있어도 아카시아 꽃 하얀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올 때면 푸른빛으로 가득 찬 산과 들은 싱그러움에 넘쳐 있고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들의 숨소리는 새로운 삶의 기쁨을 온 누리에 채우고 있다.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냇물에서 가까이 있는 우리 집은 베토벤의 교향곡 환희의 찬가처럼 웅장하지는 않더라도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어우러져 나뭇가지의 지휘에 따라 자연이 연주하는 전원 교향곡을 언제나 들을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새벽을 여는 닭소리를 시작으로 집 주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들의 합창은 좋은 아침을 알려주는 메신저이기도 하다.
며칠 전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마당을 쓸고 있는데 작은 새 하나가 농기구 창고로 쓰고 있는 헛간채로 들어가더니 다시 또 다른 놈이 따라 들어가고 함께 날아 나오기에 그냥 무심히 여겼는데 조금 후에 다시 입에 무엇을 물고 들어감으로 둥지를 짓는가 싶어서 자세히 보니 딱새 한 쌍이였다.
그러니까 재작년 이 때 해마다 우리 집에 오던 딱새 한 쌍이 주방 창틀 위에다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는 부화 하였는데 아내가 파리를 잡기 위해 장독대에 펼쳐 놓은 끈끈이에 먹이를 물어다 주던 어미 새가 붙어서 그만 죽고 말았다. 세상에 나와서 며칠도 되지 않아 어미를 잃은 새끼들이 너무 가여워서 어쩔 수 없이 둥지 채 내려서 보니 네 개의 주둥이가 입을 벌린다. 어쩌면 좋을까 고심하다가 헛간 한쪽에 두고 지렁이를 잡아서 먹여 주었는데 며칠 후 날씨가 추워지는 바람에 새끼들마저 밤 새 죽어버리고 말았다. 어미 새가 죽게 된 것이나 새끼들이 죽게 된 것이 모두 주인들의 탓인 것만 같아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치를 않다. 그래서 그 후로는 우리 집에 딱새가 오지 않았는데 이제 다시 찾아 온 것이다. 물론 죽은 놈이 다시 살아서 온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딱새가 우리 집에 다시 왔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어디에다 집을 짓는지 알아보려고 살펴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를 않는다. 좀 실망스러운 마음인 채로 잊고 있었는데 오늘 가정용 정미기 위에 버려둔 종이 박스를 치우려고 집는 순간 안쪽에 무엇이 있는 것 같아서 보니 딱새가 어느새 알을 낳아 품고 있다. 어미 새가 놀라서 도망 갈까봐 조심하여 얼른 나와서는 얼마 후에 다시 가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미 새는 그대로 알을 품고 있다. 다른 때 같으면 사람 가까이 오지도 않고 인기척만 있어도 멀리 도망가겠지만 자신의 위험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어미 딱새로서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되기도 하였다.
십여 년 전 일이다. 산자락 에 있는 부모님 산소 주변을 예취기로 깎고 있는데 나도 알지 못한 순간 알을 품고 있던 꿩이 예취기 칼날에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너무 마음 아프고 안타까워서 그 때 나는 꿩에게 이렇게 말했다. 잠시 위험을 피했다가 다시 와도 될 것을 왜 바보처럼 도망가지 않았느냐고,
두 가지 이득이 함께 있을 때 꿩 먹고 알 먹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아마도 이처럼 알을 품고 있는 것을 잡았으므로 생겨난 말이 아닌가 싶어 그 후로 나는 이 속담을 좋아 하지 않게 되었다. 어쨌든 알을 품고 있는 어미를 해친다는 것은 결코 잘 하는 것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렇다. 딱새나 꿩의 어미가 바보인 것처럼 나의 어머니도 이런 바보였던 것이다. 내가 청주에서 자취하며 학교 다닐 때 내게 오신 어머니께 책값이 없다고 하자 어머니께서는 집에 가실 차비를 주시면서 팔십 리 길을 걸어가시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 돈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바보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바보 때문에 가끔 눈시울을 적시게 되는데 그러기에 나는 며칠 전 노인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이 이야기를 들려 드리며 어르신들도 이처럼 바보처럼 살아오신 분들이라 하면서 그래도 그 삶이 지금의 보람일 것이라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이제는 그 바보에서 벗어나시라고,
이번에는 주인의 불찰로 인해서 딱새들이 불행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겠다. 새끼들이 무사히 자라서 둥지를 떠날 때까지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헛간 출입도 자제함으로 그들에게 편안한 보금자리가 되도록 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이다. 그리고 내년에도 다시 찾아와서 다른 곳에 둥지를 틀지 않고 이곳에서 다시 새끼를 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둥지 박스를 잘 두었다가 이 자리에 다시 놓아 주어야겠다.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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