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천암 보존돼야 한다.”
상태바
“석천암 보존돼야 한다.”
  • 이흥섭 실버기자
  • 승인 2012.09.27 17: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칭 충암 김정 기념사업회 구성 예정
충암 김정 선생의 문화자산을 지키기 위해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보존돼야 할 문화재들이 많이 방치되어 있다.
그 중 석천암이 2006년 8월 14일 보호관리가 해제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보호와 관심을 받고 있지 않아 다시금 문화재 지정이 되어 보호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 안타까운 마음으로 자손들과 몇몇 관계자들이 보은문화원 회의실에 모여 의견을 나누었다.
그 귀중한 문화자산을 그대로 버려 두는 현실이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김정 선생은 조선 중종때의 이상정치가이며 학자였던 충암의 숨결이 담긴 석천암이 안타깝게도 철거과정까지 지켜보고 뒤늦게 이런 사실을 확인한 지역주민과 문화관계자들이 석천암을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그동안 문화재 지정 및 가치에 대한 사전검토가 전혀 없이 존치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였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에 따느면 석천암은 충암 김정선생이 생존시(1488~1521) 후학양성을 위해 배움터로 석천암을 세우고 일제 말기에도 학도를 양성하고 지금의 종곡초등학교 모태가 되었던 배움터이고 마을의 지명 역시 김정선생과 같은 성인의 흔적이 많은 곳이다.
유래된 성족리인 만큼 석천암으로 다시금 건립되어 보존돼야 할 것이며 우리고장의 소중한 문화자산임을 인식하고 후대에 부끄럽지 않은 자산을 물려줄 방안을 찾기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충암 김정은 자는 원충, 호는 충암, 본관은 경주이며 판도 판서 장유공의 후손이다. 1504년 사마시에 합격, 1507년 중종 2년 증광문과에 장원 정언 등을 거쳐 순창 군수 때 폐비 신씨의 복위를 상소하였다가 보은 함림역에 유배되었다. 1516년 중종 11년에 풀려나와 응교 전한에 임명되었으나 후에 다시금 동부승지 도승지를 거쳐 이조참판 겸 홍문과 벼슬길에 올랐으나 후에 간신에 모함으로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되었다.
다음은 유배갈 때 소나무 껍질을 벗겨 마지막 시 한구절을 남긴 결명자라는 시조다.
바닷바람 불어오니 솔잎에 슬픈 소리 멀리 울려가고
산 위에 달 외로이 떠오르니 솔잎 없는 그림자 성글기만 하구나
곧은 뿌리 땅 밑 깊이 뻗어 있으니 눈과 서리 겪은 모습 완연 하구나
가지는 꺾인 채 잎새는 삼사도끼 찍힌 몸을 모래 위에 눕혔도다
기둥감이 되겠다던 소망은 끊겼는가
뻣뻣한 그대로 해상에 떠는 신선들에 뗏못이나 되어 흘러가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