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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2.06.2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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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가뭄으로 시달리는 땅위에 단비가 내린다. 비록 유월의 마지막 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달이 아주 가기 전에 비를 내려 주니 고맙다. 아마 유월도 나의 원망을 들으며 떠나기는 싫었던 모양이다. 기왕이면 조금만 더 일찍 내려 주었으면 좋았을 터인데, 라고 투정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 그 동안 뉴스 시간마다 가뭄으로 인하여 곳곳이 식수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농작물들이 농민들의 마음과 함께 타들어가는 현상들을 보면서 하루 속히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래도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아직은 이러한 큰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있으니 복 받은 지역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새삼 물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느끼게 하였다. 우리는 흔히 절약 할 줄 모를 때나 무엇을 낭비 할 때 하는 말로 물 쓰듯 한다고 한다. 이처럼 물은 우리 곁에 늘 함께 있으며 아무리 쓰더라도 아깝거나 부족함이 없다는 뜻으로 쓰여 지는 말이지만 그래도 하늘이 우리에게 물을 주지 않으면 이렇게 절실 한 것을 잊지 않는 마음도 필요 할 것 같다. 때로는 너무 많은 비가 내려 피해를 당할 때는 하늘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요즘 같은 가뭄에는 차라리 억수같이 쏟아져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비를 내려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지구 온난화로 이대로라면 우리나라도 아열대 기후가 되어 건기와 우기가 뚜렷해지는 재난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제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가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는 이미 오래 된 것 같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이러한 일이 현실이 되었으니 안타까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개울은 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할 만큼 깨끗하여 각종 고기들이 풍성 하였는데 이제는 대부분의 어종이 사라지고 지하수도 오염 되었다 하여 수돗물이 아니면 식수도 어쩔 수 없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재앙인 듯싶기도 하다.
이렇듯 물은 모든 생명을 존재케 하는 근원이 되기에 나도 그 은혜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일상에서 그 고마움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잘못 된 권리 때문인지 아니면 당연한 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잊혀 지지 않는 고마움이 하나 있다. 그러니까 62년 전 꼭 이때 쯤 내가 아홉 살 때 6.25 전쟁 당시 피난 갈 때 이야기이다. 그 날도 요즘만큼이나 폭염이 내리는 무더운 날씨였는데 전쟁터를 피해 험한 팔공산을 넘어 어느 마을에 이르렀을 때 모자인 듯 젊은이는 물지게로 너르기(커다란 옹기 그릇)에 물을 길어 붓고 노파는 바가지로 피난민들에게 일일이 물을 떠 주고 있었다. 갈증에 목말라 했던 피난민들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물이였을까? 아마도 오랜 가뭄으로 메말랐던 이 땅에 오늘 내려주는 이 빗물보다도 어쩌면 훨씬 더 단 물이였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때 얻어 마신 물 맛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 노파의 아름답고 어진 그 마음이 더 고마운 것 때문이리라. 물 한 그릇은 아무 것도 아닌 그저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이처럼 아무 것도 아닌 것에도 사랑이 담겨 있으면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은혜가 된다는 사실도 알게 해주는 진리가 되고 있다.
물이라고 하면 일반적인 그 뜻은 같을지 몰라도 경우에 따라서 그 의미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지금 내리고 있는 비처럼 찻잔을 앞에 놓고 아름다운 시 하나를 떠올리며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잔잔한 비가 있는가 하면 지극히 나약하고 미미한 존재임을 실감하면서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폭풍우가 있듯이 산자락의 작은 옹달샘이 있고 험난한 계곡에서 요동치며 흐르는 급류도 있으니 어떤 경우이든 옹달샘이나 이슬비처럼 사람의 마음을 촉촉이 적시어 줄 수 있는 삶의 지혜도 배웠으면 한다. 원효대사가 불도를 닦기 위해 당나라로 가던 중 어느 곳에서 유할 때 자다가 깨어 너무 목이 말라 손에 잡히는 대로 바가지의 물을 달게 먹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것은 바가지가 아닌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이여서 마신 물을 모두 토하고 싶었는데 그 순간 달게 먹은 생각을 하며 모든 것은 마음뿐인데 어디를 가나 그 마음이 그 마음인 것이므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불도라 깨닫고 그 자리에서 당나라 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신라로 돌아갔다는 일화도 있듯이 물이 흐르듯 순리로 살아가려는 마음이 삶의 지혜라는 생각도 해 본다. 목마른 사람이 누구는 조금 밖에 없는 물에 불평을 하고 누구는 조금이라도 남아있음에 감사한다는 이야기를 새겨 보면서 마음을 다스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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