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물은 모든 생명을 존재케 하는 근원이 되기에 나도 그 은혜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일상에서 그 고마움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잘못 된 권리 때문인지 아니면 당연한 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잊혀 지지 않는 고마움이 하나 있다. 그러니까 62년 전 꼭 이때 쯤 내가 아홉 살 때 6.25 전쟁 당시 피난 갈 때 이야기이다. 그 날도 요즘만큼이나 폭염이 내리는 무더운 날씨였는데 전쟁터를 피해 험한 팔공산을 넘어 어느 마을에 이르렀을 때 모자인 듯 젊은이는 물지게로 너르기(커다란 옹기 그릇)에 물을 길어 붓고 노파는 바가지로 피난민들에게 일일이 물을 떠 주고 있었다. 갈증에 목말라 했던 피난민들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물이였을까? 아마도 오랜 가뭄으로 메말랐던 이 땅에 오늘 내려주는 이 빗물보다도 어쩌면 훨씬 더 단 물이였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때 얻어 마신 물 맛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 노파의 아름답고 어진 그 마음이 더 고마운 것 때문이리라. 물 한 그릇은 아무 것도 아닌 그저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이처럼 아무 것도 아닌 것에도 사랑이 담겨 있으면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은혜가 된다는 사실도 알게 해주는 진리가 되고 있다.
물이라고 하면 일반적인 그 뜻은 같을지 몰라도 경우에 따라서 그 의미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지금 내리고 있는 비처럼 찻잔을 앞에 놓고 아름다운 시 하나를 떠올리며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잔잔한 비가 있는가 하면 지극히 나약하고 미미한 존재임을 실감하면서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폭풍우가 있듯이 산자락의 작은 옹달샘이 있고 험난한 계곡에서 요동치며 흐르는 급류도 있으니 어떤 경우이든 옹달샘이나 이슬비처럼 사람의 마음을 촉촉이 적시어 줄 수 있는 삶의 지혜도 배웠으면 한다. 원효대사가 불도를 닦기 위해 당나라로 가던 중 어느 곳에서 유할 때 자다가 깨어 너무 목이 말라 손에 잡히는 대로 바가지의 물을 달게 먹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것은 바가지가 아닌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이여서 마신 물을 모두 토하고 싶었는데 그 순간 달게 먹은 생각을 하며 모든 것은 마음뿐인데 어디를 가나 그 마음이 그 마음인 것이므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불도라 깨닫고 그 자리에서 당나라 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신라로 돌아갔다는 일화도 있듯이 물이 흐르듯 순리로 살아가려는 마음이 삶의 지혜라는 생각도 해 본다. 목마른 사람이 누구는 조금 밖에 없는 물에 불평을 하고 누구는 조금이라도 남아있음에 감사한다는 이야기를 새겨 보면서 마음을 다스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저작권자 © 보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