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에 엽공(葉公)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큰 뜻을 품은 대인(大人)이라는 것을 주위에 과시하기위해 ‘용’을 이용했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것은 ‘용’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집 담벼락, 기둥, 집안 가구, 술잔 등에 용을 그려 넣었다. 눈에 보이는 곳곳마다 용을 새겨 넣었다. 또한 틈 만나면 보란 듯이 용에 관한 책만 읽고 이야기했다.
그러던 중 하늘에 있던 용이 이 소식을 알게 됐다. 용은 자신을 그토록 존경하고 좋아한다는 엽공에 관심을 갖고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하늘에서 내려와 엽공의 집 창문에 얼굴을 디밀었다. 그러자 환희의 표정과 함께 존경의 뜻을 표할 줄 알았던 엽공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도망쳐버렸다. 용의 모습이 자신이 생각했던 형상과 너무 달랐던 것이 이유였다.
이에서 비롯된 고사성어가 엽공호룡(葉公好龍)이다. 즉 겉과 속이 다른 이율배반적이거나 사실을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척하는 것의 의미로 활용된다. 일례로써, 아무리 존경받았던 큰 교회 목사일지라도 헌금을 마음대로 유용했다면 ‘도둑질하지마라’하는 설교는 설득력을 잃을 것이다. 예수를 사랑한다고 외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십계명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의 말을 따를 것인가. 종교지도자임을 자처하면서 입만 열면 편향된 정치적 발언과 국민을 책동 이간시키는 행동을 유발한다면 그의 말을 누가 곧이듣겠는가.
자기사람만으로 자리바꿈하며 인의 장막을 치는 고집쟁이 위정자가 아무리 ‘공정사회, 공정인사’를 외쳐본들 그의 주장은 ‘공염불’에 다름 아니다. 정의롭지 못했던 ‘5공화국’이 ‘정의사회구현’을 국시로 내걸며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둘러댔지만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진실 되지 않으면 신뢰를 잃게 된다. 신뢰를 잃으면 건강을 잃은 것처럼 인간사 모든 게 끝장이다. 엽공의 용 사랑과 같은 허울만이 남게 된다.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속속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겉을 보면 화려하다. 속은 아직 알 수 없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있지 않던가. 내세우는 주장을 보면 노심초사한 흔적은 보인다. 하지만 ‘선출되면 국정과 관련한 의정활동 한답시고 지역 현안은 내팽개친 채 임기 내내 서울에서만 상주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노파심도 든다.
사실 이번에 당선되는 사람이 어느 당, 누구이든 간에 지역발전과 관련해 기대할 것은 별로 없다. 사회경력이 다채롭다 해도 결국 정치 갓 입문생이나 다름없으니 이는 마치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과 같은 격일 것이다. 이런 그에게 무엇을 바랄 것인가. 오직 겉과 속이 같아 진솔한 인격체이길 기대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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