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 행복 만들기(20)
-지순철, 루엔 김화 부부
상태바
다문화가정 행복 만들기(20)
-지순철, 루엔 김화 부부
  • 최동철 편집위원
  • 승인 2009.09.24 0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풍족한 삶은 아니더라도 그들은 매일 행복한 부부다 ” ##


▲ 집안마당의 고추텃밭이다. 순철씨는 처음엔 사진을 안 찍으려 한다. 슬며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선다. 그런데 갑자기 새색시 김화씨를 잡아 당겨 어깨에 두른다. 그리곤 웃는다.
수한면 발산리 지순철(44)씨는 요즘 구름을 탄 듯 날아다닌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눈치 챌세라 겸연쩍기도 하지만 숨길수가 없다.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행복한 감정을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새색시가 너무 예뻐 직장이 끝나면 솥뚜껑에 엿 올려놓은 듯 빨리 집에 가고 싶다. 그리고 잔심부름 등 뒤치다꺼리를 도와주며 색시 주변을 맴돌고 싶은 맘뿐이다.
순철 씨는 신혼생활의 깊은 맛(?)에 푹 빠져있다. 40대 중반 노총각이 젊디젊은 새색시와 결혼한 지 채 3개월도 안됐으니 그럴 만도하다.
순철 씨가 이처럼 행복에 겨워하는 새색시 루엔 김화(21)씨는 베트남에서 시집왔다. 지난 3월14일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6월26일 한국에 입국했다. 그리고 지난 5일에는 보은군내 각계의 후원과 협찬으로 문화예술회관에서 또 한 차례의 결혼식을 올렸다.
아직 한국말이 서툰 김화 씨에게 새신랑 자랑거리를 물어보았다.
“웃는 눈이 예쁘고, 마음 씀씀이가 자상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라는 뜻의 말을 하며 새색시답게 부끄러워한다.

# 웃는 눈이 예쁘고, 마음 씀씀이가 마음에 들었어요
베트남의 청춘문화 중에는 눈 마주치기가 있다. 공원 같은 곳에서 젊은 연인끼리 말과 움직임 없이 서로의 눈만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진실 된 마음과 눈빛만으로 서로에게 속삭인다. 말이 없으니 달콤한 말과 꾐 말 또한 없다. 김화 씨도 그 때문에 남편의 눈을 보게 됐고 진실 된 눈빛이 맘에 들었었나 보다.
사실 순철 씨는 세상을 열심히 살아 온 생활력 강한 사람이다. 그는 지체장애 4급이다. 2년 전부터 수한면사무소에서 임시계약직으로 장애인복지도우미로 근무한다. 늘 웃는 얼굴로 도우미 활동을 하는 그를 장애인들 대부분이 좋아한다.
그 전에는 농지를 임대하여 농사일을 주로 해왔다. 아버지는 30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생활을 같이 해왔다. 그런 어머니와 인근에 살던 큰 형도 3년 전 모두 작고했다. 혼자 밥을 해먹으며 외롭고 고독하게 살았다. 그러던 차에 보은군에서 국제결혼을 하면 500만원의 결혼비용을 지원해 준다고 했다. 신청서를 제출한 뒤 지난 3월 베트남 호치민시로 날아갔다. 김화 씨를 보았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그녀 또한 자신을 선택해 주었다. 물론 말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눈빛으로 앞날의 행복을 속삭여 볼 수 있었다. 그윽한 눈빛, 그 깊은 곳에서 두 사람 모두 서로의 무지개를 보았다.

# 장애인이면서도 장애인 복지도우미로 사는 열성적인 삶
김화 씨의 고향은 호치민시에서 버스를 타고 수십 개의 짧고 긴 다리를 건너고 버스와 함께 대형 페리를 이용, 폭 2km 정도의 메콩 강을 앞강, 뒷강 두 번을 건너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호치민- 미토-메콩 강의 티엔지앙(앞강)-빈롱-메콩 강의 하우지앙(뒷강)-칸토-톡녹-중긴 노선인데 이 구간을 무려 9시간 정도를 이동해야 한다.
메콩델타의 중심도시이자 산업중심지인 칸토 지역은 원래 오랜 역사 속에서 크메르(캄보디아)영토였으나 18세기 베트남인들이 점령하면서 남베트남에 종속되었다.
프랑스의 점령 하에서는 물자 수탈의 통로를 담당한 내륙 항구였고,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이른바 베트콩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지역이었다. 그래서 미국이 엄청난 양의 폭탄을 투하했던 지역이다.
친정에는 아버지 웽호우탄(53), 어머니 레이티 예(46)씨와 두 명의 오빠 모두 남롱(벼농사)을 한다. 그 외에도 어머니는 오리를, 아버지는 돼지를 사육한다.
지난 5월 처갓집에서 순철 씨도 며칠 간 생활을 했다. 베트남 당국에 혼인 신고 시 부부가 같이 면접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음식을 크게 가리지 않는 순철 씨는 그럭저럭 베트남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 동화 속 이야기처럼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순철 씨 부부는 맞벌이 부부다. 추석을 앞두고 일손이 달린 보은한과에 김화 씨가 일자리를 얻었다. 일용직으로 하루 일당 3만 원 정도 받는다. 김화 씨는 그 곳에서 일하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 생활한지 오래 된 선배 격인 베트남 언니들이 통역도 해주고 일도 지도해 줘서 별로 불편할 것도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기가 직접 돈벌이를 할 수 있어 좋다. 그는 은행에 적금들 꿈도 갖게 됐다. 그런데 남편 순철 씨가 장난스럽게 자꾸 돈을 달라고 졸라 댄다. 마지못해 주면 결국 베트남 간장도 사다 주고, 국제전화카드를 사오기도 한다. 주변에선 그것이 바로 ‘사랑놀이’라고 귀띔해주기도 한다고.
이들 부부의 신혼살림 집 근방엔 김화 씨의 ‘친정엄마 샘샘’인 손윗동서 형님이 한 분 있다. 3년 전 작고한 순철 씨 큰 형의 부인, 즉 형수인 강현수(56)씨다. 틈만 나면 들여다보고 나이어린 손아래동서를 챙긴다. 김화 씨가 ‘같다’는 뜻의 영어 세임(same)을 사용해 ‘친정엄마 샘샘’이라는 신종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아들과 딸. 두자녀를 낳고 싶다고 김화 씨는 말했다. 너무 과묵하여 술 한 잔 먹어야만 입을 여는 순철 씨도 자녀를 빨리 갖고 싶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다음날인 일요일엔 끝물인 고추를 함께 따러가기로 약속을 했다. 그리고 서로 눈빛을 보며 웃었다. 행복해 보였다.

글/사진 최동철 편집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