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 행복 만들기(19)
-신정균, 김성홍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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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행복 만들기(19)
-신정균, 김성홍 부부
  • 최동철 편집위원
  • 승인 2009.09.1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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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대 출신으로 초, 중 학생들에게 한문 가르치고 싶다! ”
뒤끝 없는 시원한 성격의 시어머니 “도둑질 빼곤 하고 싶은 것 다 해봐라” 적극후원

▲ ‘대가족 만세’ 그림 안이 꽉 찬 느낌이다. 어디를 이동하려해도 자동차 안은 늘 만원이다. 현석이와 현진이가 가족을 대표해 '하이파이브'를 했다.
세월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신정균(49), 김성홍(36)부부는 결혼한 지 어언 14년이 흘렀다. 처음 만났을 때는 35살의 마로면 농촌총각과 22살의 중국 조선족 앳된 처녀였던 그들이 어느새 4자녀를 둔 중년부부로 변했다.
비바람에 바위가 깎이고, 토사가 흘러 강산이 변하듯 이들 부부도 그동안 숱한 인생살이의 전환점을 지나왔다.
어떤 때는 행복했고, 어떤 날은 외로웠으며 또 어떤 해는 망연자실하기도 했다. 살아보니 인생은 늘 그랬다. 하지만 견뎌낼 만 했다. 세월이 약이었다. 그래서 성홍 씨는 후배 다문화여성들에게 ‘세월이 약’이라는 한국 노래가사처럼 늘 다독거려 주고 있다.
“자녀 둘을 낳는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고부갈등도 사라진다. 남편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 믿고서 기다려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성홍 씨는 현재 보은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소속 방문교육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주여성 선배로서, 경험자로서 다문화가정 여성들을 대한다. 때문에 아직 한국문화에 적응치 못한 이주여성들의 호응이 뜨겁다. 실제적 경험에 따른 필요부분을 제법 긁어주는 교육을 해주니 그럴 만도 하다.

# 어학연수 왔다 만난 인연, 자녀농사 풍성한 14년의 삶
성홍 씨의 고향은 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이다. 하얼빈이란 여진족어로 '명예'라는 뜻이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목숨을 걸고 하얼빈 역에서, 러시아 군대의 군례를 받고 있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하얼빈은 당시 독립투사들이 활동했던 우리나라 역사의 주 무대였다.
성홍 씨는 이곳에서 한국의 면장에 해당하는 공무원을 지냈던 아버지 김영락(66)씨의 외동딸로 한족계열의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중국의 초,중등 교사자격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1995년 당시 중국내 ‘조선족’에게는 이른바 ‘코리언 드림’ 열풍이 강하게 불던 때였다. 이모 한 분이 한국인과 국제 결혼하여 한국에 이주해서 살고 있었다. 또 다른 이모들과 큰어머니도 돈을 벌기위해 곧 한국으로 진출했다. 그러고 보니 고향의 친인척 대부분이 한국에 진출한 셈이다. 성홍씨도 연수 비자로 한국에 입국했다.
한국인과 결혼한 이모가 성홍씨에게 국제결혼을 권유해 왔다. 맞선 대상자는 보은군 출신이었다. 당시 정균 씨는 대전의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마로면에서 농사를 계획하던 때였다. 서로의 뜻과 마음이 맞아떨어졌다. 유일한 외동딸이 한국으로 시집을 오자 친정아버지도 뒤따라 한국으로 들어왔다.

# 결혼 초기, 첫 애 낳을 때까지 2년간은 너무 힘들었던 시기
농사일은 전혀 몰랐던 도시출신으로, 또 교사를 꿈꿔왔던 사범대 출신의 성홍 씨 입장에서 갈평리 농촌생활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결혼 초기. 더욱 그녀를 힘들게 했던 것은 ‘남의 일 간섭을 당연시 여기는 한국의 농촌문화(?)’와 주변의 의혹어린 따가운 시선들이었다. 첫 아이 현석을 갖기 전 2년 동안 별의별 소문이 다 들려왔다. 심지어 ‘도망가기 위해서 아이를 갖지 않는다’는 등 책임지지 못할 말들이 난무했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시부모인 신봉희(77), 강홍길(75)씨 마음도 편할 리 없었다. 성홍 씨 또한 모든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스럽게 한의원에서 몸을 따뜻하게 보하는 한약을 먹고 곧 임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성홍씨는 첫 아이에게 태교 등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현석(12), 현진(10), 현매(8), 현경(2) 4자녀 중 맏이인 현석에겐 늘 지금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첫 손자를 품에 안은 시어머니는 뒤끝 없는 시원한 성격답게 적극적인 그의 후원자가 됐다. “도둑질 빼곤 모든 것 다 배워라”고 했다. 그 덕분에 운전면허도 딸 수 있었다.

# 내년 5월, 홀로 사는 친정아버지 한국으로 모셔오는 것이 꿈
모든 것을 다 해볼 수 있었다. 보은읍에서 한자와 관련된 학원 강사도 해 볼 수 있었고, 중국어와 한자교육을 강의하는 교습소를 운영할 수도 있었다.
또한 성홍 씨는 남편 정균 씨가 활동하는 한국농업경영인보은군연합회가 매년 2회 주최하는 정기행사의 마로면 대표가수다. ‘당신은 바보야’ ‘자옥아’ 등 단 두 가지 레퍼토리로 청중을 휩쓸어 냉장고, 압력밥솥 등 상을 거머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성홍 씨에게는 결혼초기 말고도 어려움은 있었다. 브루셀라병으로 기르던 소 32마리가 몰살당했던 적도 있었다. 누군가의 밀고로 불법 체류사실이 발각되어 친정아버지가 중국으로 강제 추방당해 부녀간의 가슴을 애태운 적도 있었다. 추방당한 후 재입국 허가를 받으려면 5년이란 긴 시간이 흘러야 한다. 세월이 약이라고 바로 내년 5월이면 만 5년째가 된다.
정균, 성홍 씨 부부에게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네 자녀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 내년에 친정아버지가 한국에 입국하여 함께 생활하는 것, 새로 시작한 소 사육의 성공, 자신의 전공을 살려 학생들에게 중국어, 한문교육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글/사진 최동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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