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목이지만 경제한파로 흥겨운 흥정마저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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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이지만 경제한파로 흥겨운 흥정마저 사라져
  • 송진선 기자
  • 승인 2009.01.23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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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체험-설대목 앞둔 21일 보은재래시장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장년층의 기억 속에 오롯이 살아있는 어린 시절 설은 지금과 그 풍경이 너무 다르다. 가난하던 시절 설은 추석과 함께 풍성함의 상징이었다. 오는 26일 설날이다. 설밑 마지막 보은장인 지난 21일 대목 장에 나갔다. 기대했던 풍성함 대신 설 경기는 너무 추웠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에게서 설을 기다리는 여유로운 마음을 읽을 수가 없었다. 설 대목이 사라진 보은 재래시장 풍경을 스케치 해본다.

#설, 누구나 기다린 명절이었는데
집안의 사정에 따라 누리는 여유가 조금씩 달랐지만 명절은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다.
어린 동생들은 도회지로 나간 형님, 누나의 귀향을 손꼽아 기다렸다. 어린 마음에 형님, 누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보다 양손 가득 들고 올 선물 보따리를 사실상 더 기다렸던게 사실이다.

세뱃돈도 받을 수 있고 고기며, 과자며, 과일 등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을 이날만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설을 기다린 이유 증의 하나였다.

이처럼 명절은 누구에게나 기다려지는 것이었고 특별한 기대를 갖게 했다.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장보는 사람이나 물건을 파는 사람 모두 대목 장의 흥겨움이 넘쳐났다. 평소 장사가 신통치 않았던 상인들도 설 대목 장을 기다렸을 정도로 재미가 쏠쏠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핵가족화로 사람이 모이지 않고 산업화로 농촌에 사람이 없어 장사하는 사람도 덩달아 ‘돈 만지는 재미'가 사라졌고 '대목 재미 좀 보았다'는 말은 장사하는 사람에게 아련한 추억 속의 이야기가 돼 버렸다.

특히 최근에는 형편에 따라 조금 싼 물건, 값은 다소 비싸지만 덤으로 물건 몇 개를 더 주던 훈훈한 인심에 재래시장을 찾았던 할머니, 아주머니조차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대목이지만 경제한파로 흥겨운 흥정마저 사라져설을 앞둔 21일 보은 재래시장. 대목장임에도 불구하고 흥겨움 넘쳤던 옛 대목장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명절특수 사라진지 오래
지난 21일 대목 장 풍경은 사람은 평소 장날보다 많긴 했지만 흥정하는 맛도 없었고 생기도 없었다.
상인들은 파 한 단이라도 팔기 위해 손님들을 붙잡았고, 손님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비싼지 살듯 말듯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하다가는 그냥 지나가는 것을 보니 제수용품 구입 비용이 만만찮은가 보다.

이날 시장에서 만난 주부들은 “설을 지내기 위해 20만원어치 물건을 구입할 계획이었는데 값이 많이 올라 20만원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며 다들 혀를 내른다.

실제로 과일과 곶감, 채소, 과자 등 제수용품을 모두 구입할 수 있는 시장 안의 한 업소에서 판매하는 제수용품 가격을 살펴봤다.

사과와 배는 지난해보다 30% 정도 싸다. 지난해 사과 제일 좋은 것이 개당 2천500원이었는데 올해는 2천원으로 500원정도 저렴해졌지만 곶감은 초반에 쌌는데 며칠 사이 많이 올랐다.

지난해 초겨울 1접에 3만원 하던 것이 구정 밑에 4만원으로 1만원이 올랐고 보은대추는 가격이 올라 지난해 130g을 2천원에 팔았는데 올해는 10g이 감소한 120g을 2천원에 판매하고 있다. 쪽파는 1단 3천500원이다. 얼마 전보다 500원이 올랐다.

또 다른 제수용품 업소 주인은 “아직 설날이 남아있기 때문에 오늘부터 설 밑까지 계속 장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그래도 설 밑 마지막장이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물건을 많이 사긴 하는데 경제가 어렵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물건을 많이 사지 않고 양을 적게 사고 또 사는 가지 수도 많이 줄이고 있어 설 대목을 볼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어물전인 관기상회 주인도 “손님들이 주로 사가는 것이 명태포와 조기, 닭 정도이고 식구들 먹는다고 동태 몇 마리씩 사 가는데 생선가격이 크게 올라 손님들이 많이 사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전에는 동태 한 짝에 4만원 하던 것이 지금은 5만2천원 할 정도로생산 값이 올라 명태포도 넉넉히 떠서 가던 손님들이 이젠 제사 지낼 정도만 사고. 식구들 먹는다고 겨우 동태 1마리 사갈 정도”라며 “돈이 돌아야 하는데 아예 돈을 쓰지 않으니까 우리같은 소점포 상인들은 점차 살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예전에는 한 말 정도 떡국떡을 빼서 집에서 써는 것도 설을 쇨 준비를 하는 하나의 과정이었는데 지금은 방앗간에서 만들어 놓은 떡국떡을 사가는 것이 대세다.

한 떡 방앗간 집 주인은 “가래떡을 많이 뽑아서 자식들도 주고, 작은집도 나눠주곤 했는데 이젠 필요한 양만 사가는 손님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1㎏ 3천원, 1㎏600g 5천원, 3㎏600g은 1만원을 받는데 1만원짜리가 잘 팔린다고 한다.

#노점상은 몇 천원 팔기도 어려워
장날만 재래시장 안 한쪽에 좌판을 벌인다는 김기순(74, 보은 어암2리)할머니는 콩나물과 청국장을 갖고 나와 팔지만 이날은 영 판매가 시원치 않다.

김 할머니는 “내가 지은 것으로 집에서 직접 콩나물을 기르고 청국장도 띄워 갖고 나와 1천원어치 씩 파는데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겨우 마수한 것을 보면 오늘도 벌이는 시원치 않을 것 같다”며 “보일러 기름값 등 생활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 용돈이라도 벌기 위해 나오지만 대목은 생각도 못한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 건너편에 좌판을 벌인 한재복(72) 할머니는 젊은 주부와 도라지 5천원어치를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도라지 한 두 뿌리를 더 달라고 떼를 쓰는 주부에게 5천원어치 보다 더 많이 줬다며 손을 내저었다.
한 할머니는 “마늘, 고구마, 호박고지, 무 청 시래기, 말린 토란줄기 등 농사지은 것을 갖고 나와 파는데 벌이가 영 시원찮다”고 말했다.

“1천어치도 팔고, 1만원어치도 팔고 마수도 못할 때가 많은 데가 오늘은 사람이 많으니까 조금 팔릴 것 같다”고 잔뜩 기대를 하신다.

한 할머니는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고 내 혼자 살아, 용돈이라도 벌어서 쓰려고 장사를 나오는데 경제가 어려운지 그 전만큼 안 팔린다”며 아쉬워 했다.

대전에서 물건을 떼다 파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 직접 농사지은 것을 노점에서 판다는 보은 신함1리 이광규(75)씨. 할머니는 장날이면 할아버지가 아침마다 물건을 실어다 줘서 좌판을 벌인다.

좌판에는 직접 만든 두부와 메밀묵도 있고, 그냥 참깨는 잘 안팔려 볶아서 가지고 온 참깨도 있고, 직접 접은 곶감에 고춧가루 조금, 묵나물, 호박고지 나물, 이팥, 적두, 서리태, 약콩 등 이광규씨가 농사지은 다양한 농산물이 진열돼 있다.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가지고 나왔는데 오늘은 설밑이라 그런지 벌써(오후 1시경) 8만원 매출을 올렸다”며 “하루 종일 있으면 10만원은 넘을 것 같다”며 흡족해 했다.


#손님들은 살까말까 망설여
물건을 많이 팔아야 하는 상인들과는 달리 시장을 찾은 손님들은 물건을 사야하지만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하고 있다.

시아버지 한 분 상만 차리면 된다는 회인면 송평1리 오영만(58)씨는 “곶감과 대추는 집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사과와 배, 명태포, 부침 재료, 고기 구입비용으로 20만원을 생각했는데 값이 많이 올라 모자랄 것 같다”며 “명절에 식구들이 다 모여 웬만하면 푸짐하게 음식도 준비해서 먹어야 하는데 농산물 가격도 그렇고 농촌에 수입원도 없으니까 절약할 수밖에 없어 식구들이 먹을 것을 덜 사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산4리에 산다는 이 모(77)할머니는 “우리집은 설날이면 아들 4형제가족에 동기간 4형제 가족까지 모이는 대가족이라서 음식도 많이 장만하느라 비용이 많이 든다”면서 “도시에 사는 며느리들이 와서 음식 장만은 하는데 일하기 쉬우라고 제수용품은 미리 사다놓는데 물건 값이 많이 올랐어. 비싸도 사야지 어떻게 해”하며 물건을 고르고 값을 치렀다.

탄부면 상장1리 조돈석(80)할아버지와 이종전(78) 할머니 부부는 함께 시장에 나와 노점에서 파 한 단을 사기 위해 많이 망설였다.

이들 부부는 구입한 물건을 가지고 갈 일이 막막해 “마트에서 사면 집에까지 배달해준다고 해서 대부분의 물건은 마트에서 사고 적 부치려고 쪽 한 단을 사려고 하는데 그것도 비싸네” 하면서 까놓은 것을 살까 뿌리가 있는 것을 살까 몇 번을 재고 있다.

지팡이에 의지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데 직접 장을 보는 이유에 대해 묻자 이종순 할머니는 “ 조상님 4분의 제사를 모시는데 며느리들이 사면 이것저것 생각안하고 구입해 돈을 많이 쓰기 때문에 절약 하느라고 내가 산다”고 말씀 하신다.

대형마트에 손님을 뺏기고 경제한파에 오는 손님은 지갑을 열지 않으니 이래저래 재래시장은 올 설도 특수를 보기는 글렀다.

없는 돈에 그래도 명절 대목인데 하는 마음으로 구비해놓은 물건을 팔 수 있을 지 걱정하는 상인들의 한숨소리가 깊다.

#재래시장 활기를 띄었으면
시장은 사람의 발걸음으로 먹고사는 삶의 현장이자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는 교류의 장이다.
더위와 추위를 모르고 편안하게 물건을 고를 수 있는 대형유통업체와 다른 특별함이 재래시장에는 살아있다.

손자들에게 세뱃돈을 주고 손자들의 손에 쥐어줄 과자 몇 봉지를 사려고 시장 모퉁이에 앉아 콩나물을 파는 할머니에게 아직 시장은 생존의 현장이자 꿈을 이룰 수 있는 희망 그 자체다. 이게 바로 재래시장의 존재 이유다.

재래시장이 안고있는 자본의 취약성과 시장의 구조적 한계로 대형마트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유의 시장구조를 개척해 소비자들을 유인할 수 있는 대체구조로 특화해 활기를 띠는 재래시장을 구경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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