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막걸리 애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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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막걸리 애용해주세요
  • 송진선
  • 승인 2005.09.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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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물림 업소를 찾아서 … 80년 역사의 관기 양조장
영농으로 인한 피로를 푸는데 막걸리가 제격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모내기를 하거나 콩을 심거나 농작업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막걸리는 농주였고 대접 한가득 채워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저은 뒤 한 잔 거나하게 꿀꺽꿀꺽 마시고 난 후 손바닥으로 입술을 한 번 훔친다.

그리고 김치조각을 쭉 찢어서 입에 넣으면 안주로 제격이고 천하일미였다. 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한 탁주 한 잔으로 타는 목을 축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는 막걸리에 빈대떡이나 두부김치로 날 궂이를 한다.

그렇게 막걸리는 예부터 서민들의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활력소였고 눈물이었으며 기쁨이었다.

가정 형편이 나아 집에서 쌀로 동동주를 담을 처지도 안되는 집에서는 추석때 막걸리는 5되, 한 말을 받아 그것으로 제주를 하고 이웃들과 술 한 잔이라도 나눠온 그야말로 서민주다. 이와 같이 막걸리는 우리 생활에 있어 없어서는 안되는 기호 식품이었다.

그러다 80년대 들면서 산업화로 인해 농촌인구가 줄고 소주가 대중화되고 맥주가 일반화되고 양주가 파고들었으며 90년대 막걸리는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웰빙을 트렌드로 하고 있는 요즘은 막걸리, 그중 살균하지 않은 생막걸리를 웰빙음식으로 취급, 판매율이 다소 회복되고는 있으나 극히 미미해 양조장 업자들이 과거 막걸리의 영화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체 양조장이 2000여개에 달하다 최근에는 700여개로 감소했다. 보은군도 12개가 운영됐지만 지금 남은 것은 보은읍과 마로면, 회북면, 산외면 4개의 양조장이 가동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 40년, 아들 40년 80년 역사
예부터 정미소와 양조장 집은 물어보나 마나 부자였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얼굴에 핏기가 없고 버짐이 필 정도인데 정미소와 양조장집 아들은 얼굴에 기름기가 돌고 뽀얀 것이 금방 비교가 될 정도였다.

경주 최씨로 경주에서 보은으로 이사와 대를 이어 가업을 잇고 있는 관기 양조장집은 알아주는 재력가였다. 현재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부웅(66)씨의 아버지는 양조장과 재생의원이라는 병원을 운영했다.

40년간 양조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슬하의 10여남매 중 양조장을 맡을 적임자를 찾기 위해 첫째 아들에게도 맡겨보고 셋째 아들에게도 맡겨보고 했지만 다들 적성에 맞지 않아서인지 얼마 못하고 그만두고 결국 다섯 째 아들인 현재의 최부웅씨에게 맡겨졌다.

관기초(30회), 보덕중(1회), 보은농고(9회), 동국대 법학과를 나오고 군 제대 후 27살 때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는 다섯째 아들을 관기 양조장에 눌러 앉게 만들었다.

지금 66세이니 거의 40년 운영하고 아버지가 40년을 운영했으니까 관기양조장 80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배달만 5, 6명이 하고, 서기가 별도로 있을 정도로 양조장 전체 직원이 10명 남짓 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배달 구역은 마로면 전체로 기대방면은 거리가 멀어 달구지에 막걸리 통을 잔뜩 실어 소가 운반하는 배달형태였고 수문, 적암 방면은 짐 자전거에 말 통 두개씩 양쪽에 총 4개를 싣고 배달을 다녔다고 한다.

기대다리가 놓이기 전 사람과 달구지, 소가 물위로 둥둥 떠서 떠내려가듯이 건넜고 나무로 만들었던 막걸리 통은 물에 잠겨 물 반 막걸리 반으로 희석되기도 했고 겨울철 눈이 많이 올 때는 한 번 배달 나가면 미끄러져 가까웠던 거리도 하루 종일 걸리기 일쑤였다.

또 지금과 같이 기름으로 보일러를 돌려 수증기로 덧 밥을 찌는 것이 아니고 장작으로 무쇠 솥에 물을 끓여 그 수중기로 덧 밥을 쪄내는 등 일일이 손으로 하는 과정이어서 한 번 술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밑 밥으로 쌀을 사용하다 밀가루를 이용했고 옥수수도 이용하다 다시 쌀을 사용했고 현재는 밀가루를 사용하고 있다.

막걸리 제조에 들어가는 물도 처음에는 펌프로 일일이 퍼 올려 사용하다 자동모터를 달아 손쉽게 이용하는 등 많은 변화를 겪었다. 관기 양조장은 지하 100m안팎에서 물을 끌어올렸는데 검사 결과 수질이 깨끗하고 물맛이 좋은 탓인지 경상북도 평온이나 화령에서도 관기 막걸리를 일부러 와서 사갈 정도로 맛이 탁월하다.

막걸리의 역사
막걸리가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 때부터다. 이달충 ( 李達衷)의 시에 ‘뚝배기 질그릇에 허연 막걸리’ 라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나 지금이나 서민의 술로서 막걸리 이미지는 불변임을 알 수 가 있다.

곡주가 익어 청주와 술지게미를 나누기 이전에 막 거른 술이라 해서 막걸리다. 문헌에는 탁주(濁酒), 백주(白酒), 박주(薄酒)라고도 했다. 오늘날에도 널리 애음되고 있는 막걸리인 탁주는 약주와 함께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도시의 서민층과 농민에게까지 널리 기호층을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의 토속주이다.

탁주는 예로부터 자가제조로 애용되었기 때문에 각 가정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만들어져 그 맛도 다양한 것이 특징이었으며 대중주로서의 위치도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탁주는 지방방언으로 대포, 모주, 왕대포, 젓내기술(논산), 탁배기(제주), 탁주배기(부산), 탁쭈(경북)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삼국시대 이래 양조기술의 발달로 약주가 등장했지만, 탁주와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았다. 같은 원료를 사용해서 탁하게 빚을 수도 있고 맑게 빚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이래로 대표적인 탁주는 이화주(梨花酒)였다. 이 이름은 탁주용 누룩을 배꽃이 필 무렵에 만든 데에서 유래했으나 후세에 와서는 어느 때나 누룩을 만들었으므로 그 이름이 사라지고 말았다.

일반에 널리 보급된 탁주는 가장 소박하게 만들어진 술로서, 농주로 음용되어 왔다. 탁주와 약주는 곡류와 기타 전분이 함유된 전분당, 국 및 물을 원료로 한다. 여기에서 발효시킨 술덧을 여과, 제성했는가의 여부에 따라 탁주와 약주로 구분된다.

막걸리 제조는 이렇게
아마 그 옛날 양조장을 지나갈 때 빵을 찌는 가 싶을 정도로 구수한 냄새에 취한 적이 있을 것이다. 온도와 습도가 알맞은 국실에서 밀가루를 반죽해 발효시킨 것에 밑술인 종곡을 첨가해서 3일간 발효시킨다

여기에 덧 밥으로 사용하는 밀가루에 물을 혼합해 반죽한 것을 솥에 넣고 수증기로 떡을 찌듯이 쪄낸 덧 밥을 냉각기로 옮겨 30분 정도 바람으로 식힌 후 종곡을 첨가해서 3일간 숙성시킨 덧 밥을 탱크에 넣어 다시 3일간 숙성시키면 막걸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제조된 막걸리는 알콜 농도 6%인 약주이다. 우리가 흔히 ‘모리미’라고 하는 것은 막걸리 원액을 거른 것으로 알콜 농도 14∼15%로 독하지만 일반 소주 정도의 도수에 불과하다.

현재 관기 양조장에서 제조하는 막걸리는 포천 막걸리와 같은 살균 막걸리가 아닌 균이 살아있는 생막걸리이다. 이에 따라 효소의 영양학적 성분에 의해 성인병의 예방, 갈증 및 허기를 해소하여 지나치지 않으면 그 어느 술보다 우리 몸에 이롭다는 생각이다.

우리 막걸리 많이 이용하길
90년대 탄부 양조장을 인수해 지금은 마로면과 탄부면 외속리면을 배달권역으로 하고 있는 관기 양조장은 한 때 배달인력이 대 여섯 명에 이를 정도로 호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도 없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없어 막걸리를 제조하는데 최소한 2명은 필요하지만 이마저도 확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원 1명이 있었으나 그만 두는 바람에 현재는 인력시장에서 매일 1명을 확보해 겨우 명맥을 유지해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최부웅 사장은 “60세까지만 하려다가 자식들 모두 출가시킬 때까지만 하는 식으로 사업을 연장했는데 첫째로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하지 못하겠다”며 “힘에도 부치고 계속 양조장을 유지해 나갈 수 없는 형편이란 생각이 드는데 양조장을 인수할 사람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없으면 그냥 폐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발효과정에서 생성되는 구수하고 감칠맛에 청량감, 독특한 향과 풍부한 영양분까지 지니고 있어 그 옛날 막걸리 한 대접이면 꺼진 배도 일어날 정도로 서민들의 굶주림까지 해결해줬던 막걸리.

고급스런 병에 담는 것도 아니고 예쁜 빛깔로 상가 진열대를 휘황찬란하게 장식하진 않지만 우리의 전통주 막걸리는 투박하고 빛깔도 탁하지만 왠지 고급스런(?) 그런 술보다 우리의 전통 명절인 추석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우리의 전통주인 막걸리로 우정을 나누고 형제애도 나누는 그런 추석으로 특수를 누렸으면 하는 기대를 걸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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