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육의 메카 보은 우시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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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육의 메카 보은 우시장을 가다
  • 송진선
  • 승인 2005.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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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역사 점차 쇠퇴, 번성기때 하루 170두 이상 거래
보은군 한우는 살과 지방의 분포가 가장 최상인 상태의 비육으로 최고 등급 판정을 받는 등 서울 축협 공판장에서 고급육 생산 지역으로 이름이 나있다.

한우 하면 강원도 횡성 한우 등을 치지만 이에 못지않는 사육기술로 보은군이 고급육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한우 전문 사육농가들이 사육 정보도 얻고 또 다른 농가가 비육한 소들을 관찰할 수 있는 장이 되는 보은 우시장.

전날 내린 눈이 6.3㎝ 정도 쌓여 사육농가의 우시장 방문이 감소한 지난 26일 경쟁력이 높은 품목으로 떠오른 한우가 거래되는 우시장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송아지 시장 전국 명성 10만원 더 비싸

보은 우시장은 특히 송아지, 암소 거래가 활발하고 자질이 우수한 소들이 많이 출하된다.
송아지의 경우 다른 지역에서 4개월령을 출하하는 것과는 달리 보은우시장에는 5, 6개월령의 송아지들이 출하, 잘 크고 증체량도 높아 보은에서 송아지를 구입해간 사람들로 부터 보은 송아지가 우수하다는 소문이 퍼져 옥천군보다 10만원 정도 더 비싸다.

따라서 비육이나 송아지 생산을 위한 암소 구입을 위해 상주, 옥천, 영동, 괴산, 청천, 청주(청원), 경기도 안성, 충남 당진에서도 보은 우시장을 찾는다.

보은 우시장은 보은장의 개설 일을 바꾸는데도 역할을 했다.

보은시장이 도내에서는 청주, 제천시장 다음으로 컸는데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대전과 근접한 옥천시장에 주도권을 뺏기자 1986년 보은은 5일과 10일에서 1일과 6일장으로 바꾸고 1일과 6일에 장이 섰던 원남 장은 3일과 8일로 변경됐다.

우시장 중에서는 도내에서 제일 번성했던 보은 우시장은 영남지방의 가축들이 도로로 대구→상주→보은→청주→서울로 이동하던 통로가 돼 시장 번성을 주도했지만 고속도로개통은 차량으로 대구→김천→옥천→대전→서울로 변경됨에 따라 상권이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현재는 도내 대부분의 우시장은 없어지고 청주, 보은, 옥천 시장만 그나마 활성화 된 상태다.

■ 79년 우시장 개설

전체 2847평 부지에 계류시설은 250두 가량을 맬 수 있는 보은 우시장은 1979년 4월24일 보은읍 수정리 94-1번지에 개설한 것으로 토지대장이 관리되고 있다.

보은군에서 소유하고 축협에서 관리하던 것으로 1989년 1월28일 축협에 팔았다.

보은군 소유였을 당시 우시장에 들어갈 때 소위 말뚝세라 불렸던 입장 티켓을 끊어야 우시장 안으로 소가 들어갈 수 있었는데 당시 송아지 200원, 큰 소의 경우 300원을 받았다.

그러다 89년 축협으로 소유권이 이전되면서 말뚝세가 없어졌다.

당시 송아지 2500원, 큰소 3000원을 받았던 매매 수수료를 지금은 송아지 5000원, 큰 소 1만원으로 올랐다.

당시는 집집마다 밭을 갈거나 논을 삶는데 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시기여서 농업소 한 마리이상 거의 모두 길렀던 때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소 한 마리는 한 집안의 가장 큰 재산이기도 했다.

운송 수단이 여의치 않아 40, 50리 길도 멀다 않고 걸어서 우시장에 닿아야 했다.

■ 한 때 하루 170두 거래, 올해 1월1일장 3마리 출하

가축 매매법 개정 전 우시장을 통하지 않은 거래는 밀매로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기도 했다.

이로인해 일단 소를 사고 팔기 위해서는 일단 우시장에 나와야 거래가 이뤄진다.

그래서 우시장이 활성화돼 축협에 남아 있는 자료 중 가장 오래된 1988년 가축시장 실태조사서를 보면 하루 장에 170두 가량 거래된 것으로 나타났다.

계속 이같이 유지되다 2000년 우시장을 통하지 않는 거래도 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면서 우시장은 침체의 길에 들어섰다.

법 개정으로 2000년 하루 장 거래 두수가 86두로 크게 줄었다.
더욱이 고급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또 인터넷 등으로 정보 습득이 용이해지자 우시장에서의 거래량은 더욱 줄고 있다.

특히 올해 1월들어서 거래량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는데 1월1일장은 겨우 3마리가 출장을 나왔지만 거래가 한 마리도 안되었고 지난 26일장에도 송아지 4마리, 큰 소 2마리만 출하됐다.

그럼 소의 무게는 어떻게 쟀을까?

예전에는 추를 올려 수평을 이루게 한 후 무게를 재는 수동 방식이었다.
그래서 소의 중량을 조금이라도 더나가게 할 요량으로 주인이 발을 저울에 올려놓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이같은 반칙으로 서로 주먹다짐을 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왜냐하면 발을 하나만 올려놓더라도 실제 소의 무게보다 10여㎏ 더 무게가 나가 지불해야 할 돈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전업 농가에서는 자체적으로 몸무게 다는 시설을 설치하고 소가 그 시설에 올라가면 자동으로 전자저울에 소의 무게가 찍히는 지금에야 오산이 있을 수 없다.

■ 소 값 파동 때 송아지 10만원

84년 전두환 정권 때 한우 사육농가들의 최악의 상황이었다.

5, 6개월 키운 송아지가 10만원, 큰 소도 150만원, 200만원에 불과했다.

특히 지난해는 한우 암 소 부족으로 한우 가격의 고공 행진이 계속돼 가장 절정을 이뤘던 지난해 2∼3월 암소는 ㎏당 1만500원 500㎏일 경우 507만5000원, 암송아지가 400만원, 수송아지가 300∼380만원에 거래됐고 임신한 소는 700만원까지 가격이 형성이 됐다.

요즘은 암소는 ㎏당 8300원, 황소는 ㎏당 6200원, 암 송아지 280만원, 수송아지 190만원대의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84년 소 값 파동 때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가격차이를 보이고 있다.

■ 중개인 우시장과 뗄 수 없는 인연

농산물 시장이나 어시장에서 볼 수 있는 중개인과 같이 입찰을 붙이는 것은 아니라 과거에는 중개인에 의해 소 값이 정해졌다.

중개인이라고 해서 별도의 자격증이 있는 것이 아니라 1년에 한 번씩 신체검사를 하고 또 축협에서 교육도 시키고 다년간 우시장을 출입하면서 소를 보는 눈을 키워 일선에서 중개를 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공판장이 가격을 금방 확인 할 길도 없었고 정보에 어두워 중개인이 매기는 대로 값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강원도 한 우시장에서 거래된 소 값을 한 달이 지난 후에야 보은에서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격 정보가 느려 중개인은 막중한 위치에 있었다.

중개인 중에는 순수하게 중개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중간 상인까지 하는 경우도 있어 중개인들 주머니에는 항상 100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도 들어있을 정도로 풍족했다.

돈을 많이 버는 대신 물 쓰듯이 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돈 벌 욕심으로 중개인을 서로 하려고 해서 30명까지 운영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12명으로 줄었다.

또 컴퓨터로 전국의 소 시세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 보은 우시장에 나오기 전 이미 다른 지역의 우시장의 가격을 확인한 후 나오기 때문에 사실상 중개인의 역할이 크게 없어졌다.

우시장도 과거에 비해 기능이 크게 줄어 나중에는 우시장이 없어질 수 있다.
그러나 우시장이 없어지면 다른 지역으로 출하를 위해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 등 유통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또 정보를 습득하고 또 비교할 수 있는 곳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시장의 기능 축소로 보은우시장이 폐쇄되면 농민들은 손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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