吉運의 동물 ‘말’ 역사주역으로도 큰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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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運의 동물 ‘말’ 역사주역으로도 큰 명성
  • 보은신문
  • 승인 1990.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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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에 충직… 박혁거세 탄생설화 유명
90년대를 여는 올해는 庚午年, 말의 해이다. 말은 12支 중의 午. 午는 1년 중 6월, 하루에서는 대낮에 해당한다. 인내의 상징인 말은 일찍부터 우리민족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왔다. 기마민족의 후예인 우리민족은 말로 한몸이 되어 광활한 만주벌판을 달리고 달렸다. 우리나라에 말이 들어온 것은 약 2천5백여 년 전 철기시대에 새로운 기마민족들에 의해 한반도에 말이 정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말은 키가 5척이면 구(驅), 7척이면 내, 8척이 넘으면 龍馬라 불렀고 힘센 말은 융마라 하였다. 작달막한 것은 현구(玄駒)인데, 한국재래종의 왜소한 것은 따로 果下馬라 칭했다. 키가 작아 말을 탄 채 과수나무 밑을 지날 수 있다는 얘기다. 흔히 날쌔고 좋은 말을 준마(駿馬)라 하는 반면 둔마는 노태라 한다.

말은 근력이 소와 비슷하지만 운동속도는 약 2배에 달한다. 말의 민첩성은 야생시절 물을 찾아 장거리를 달리던 습성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이는데 주력은 시속 18㎞로 단거리에서는 시속 66㎞의 놀라운 속도를 낸다. 말은 무리를 지어서 생활을 한다. 그 무리 속에는 우두머리가 있어 우두머리의 통제하에 일사불란한 생활을 한다. 말은 우직한 순종형의 동물로 두뇌가 발달돼 있고 특히 귀소성이 뛰어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집계에 따르면 85년 현재 전세계의 말은 6천9백여 만 마리가 있으며 우리나라는 겨우 1만마리도 안되는 말이 있을 뿐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말인 제주의 조랑말은 최근 들어와서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그 이유는 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된 경운기 등 농기계류의 등장때문이다. 사라지는 조랑말 보호를 위해 86년 2월 순수조랑말 64마리를 천연기념물 제3백47호로 지정,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 말의 종류로는 약 40종이 있으며 승마용인 영국산 드루브레드는 한 마리에 수억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말을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 왔으며, 말띠해에 남녀모두 의식주가 넉넉하고 관운이 따른다고 믿었다. 실제로 말띠중에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 많이 있다. 조선조 세종때 6진을 개척한 김종서, 실학자 다산 정약용,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세종때 아악정리에 힘쓴 박연, 금석문 해석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던 추사 김정희, 병자호란 때의 명장 임경업 등이 모두 말띠였다.

말을 소재로 한 유적, 유물로는 고구려의 고분인 쌍영총, 강서대묘, 무용총 등의 벽화가 있고 특히 천마총에서는 ‘천마도’가 출토되었다. 또 신라인의 유물중에는 말을 탄 사람의 모습을 빚은 토우나 말모양의 토기가 많다. 말에 얽힌 이야기도 여러 가지가 전해진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설화에도 말이 등장한다. 고허촌(古墟村)의 촌장이던 소벌공(蘇伐公)이 하루는 우물 곁에 있는 숲 속을 바라보니 이상한 빛이 하늘로부터 드리워져 있었고 그 빛 속에 백마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그곳을 찾아가보니 말은 간 곳이 없고 불그스름한 알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알을 깨고 나온 사내아이가 후에 신라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임경업 장군의 말은 장군이 역적으로 몰려 곤장을 맞아 죽자 먹기를 그치고 크게 한번 울더니 피를 토하며 죽었다고 전한다. 또 백제말엽 당나라장수 소정방이 현재의 부여 백마강에서 백마를 미끼로 어룡(魚龍)을 낚았기 때문에 뒷날 이 강을 백마강이라고 불렀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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