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부면 고승 임승재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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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부면 고승 임승재 옹
  • 보은신문
  • 승인 1993.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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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지 새로 편찬…반가운일』
선조들의 삶이야 집안어른을 만나 족보를 펼치노라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내 고향, 내 이웃이 어떠했고 무엇이 있었는지를 알기란 쉽지 않다. 특히 문서화되어 잇지 않다면 더욱 어렵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보은에는 이처럼 고향의 세세한 이야기가 담긴 문서화된 자료가 없었다.

이에 뜻 있는 이들이 모여 우리의 후손과 이웃에게 보은을 알려주고자 보은군지를 편찬하기에 이르렀다. 군지편찬에 뜻을 같이한 이들 중의 한 사람이 임승재옹(86. 탄부 고승)이다. "1970년 4월에 군지를 발행했는데 3년여에 걸쳐 자료를 수집했고 재원확보의 어려움도 많았다. 특히 물적·역사적 증거가 확연치 않아 힘이 들었고 허위자료 제공도 있었다"며 군지발간시의 어려움의 얘기하는 임승재옹은 "외속리면에 친지가 있어 보은과 인연을 맺은 이고선씨(작고)가 열의를 가지고 도와 주었는데 거의 모든 작업을 맡아했었다"고 회고한다.

한학을 많이 공부한 관계로 향교 전교를 맡고있던 임승재옹은 뜻 있는 유지들과 군지편찬 작업에 적극 동참하였고 이들의 노력에 당시 이중천 군수도 재정지원에서 자료협력가지 합심하게 되었다. "조상의 훌륭한 업적과 역사, 자연, 사회상 등을 우리들 스스로 자랑하고 후손에 물려주기 위한 일에 모두들 열심이었고, 후에 미비한 점도 많이 발견되었지만 나름대로 많은 자료수집과 공정성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설명하면서 "한문이 많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는데 새로이 한글로 군지를 만들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고 편찬 작업에 애쓰는 이들의 노고를 치하한다"고.

군지를 편찬하면서 자문해오는 이가 없어 서운해하는 마음을 일면 비추기도 하는 이승재옹은, 미수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뚜렷한 의지와 지치지 않는 기백으로 건강을 유지하며 나들이를 하거나 친구를 만나는 등 조용하고 의미 깊은 노후를 영위하고 있다. 유복했던 가정환경 속에서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운 그는 신학문에도 관심이 높아 소학교과정(국민학교)을 검정고시로 마친 뒤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고 일본의 명치대학 법학부에 유학해 폭넓고 심도 있는 학문을 연구한 학자이기도 하다. 해방 후에는 정치에도 관심을 가져 정객들과 대사를 논하면서 직접 활약하기도 했지만, 후에는 고향으로 내려와 초야에 묻혀 살며 지역과 주민을 위한 일에 적극 참여하였다.

특히 향교를 통해 우리의 전통을 간직하고 계승시키려 노력했으며 향교 충청북도협회 이사장도 역임한 역량 가이다. 지금도 지난날 관공서에 근무하던 70세 이상 노인들의 모임인 담수계를 조직, 지역 일을 논의하고 기관장을 초청해 조언을 해주거나 폭넓은 대화를 나누고 있기도 하다. 3남4녀의 다복한 가정을 이끌어 자제들을 사회의 중추적 인물로 성장시키고 10여년전에 부인과 사별한 뒤 홀로 고향집을 지키고 있지만 자식들을 자주 찾거나 고향산천의 아름다움을 둘러보며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


<금주에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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