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읍 월송리 이상목씨
상태바
보은읍 월송리 이상목씨
  • 보은신문
  • 승인 1993.06.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남참전 후유증 치료 원해』, 십여년을 함께 해온 원인모를 고통
한국군 원남파병- '66년 9월20일 이상복씨 (50. 보은월송2구)가 소속된 백마부대 29연대 3대대 12중대 1백20여명은 환송나온 부모형제의 태극기 물결속에 부산항을 떠나는 배에 올랐다. "백마부대로선 제1진이라 후속부대가 올 때까지 진지를 구축하느라 온 밀림을 헤매며 고생했다"는 이상복씨 "나트랑 지역에서만 17개월간 전쟁을 치렀는데 옆에서는 전우가 수류탄에 산화하고 베트콩이 텨들어와 대원이 거의 전멸해 소대에서 3명만니 살아 남았었다"며 치열했던 전투를 회상한다. '63년 3월 하사로 입대, 월남전에 참전하고 귀국하면서 곧바로 제대해 고향땅으로 돌아온 이상목씨는 전쟁의 기억을 뒤로한채 부모님과 농사를 지으며 늦은 결혼도 하고 열심히 생활했다.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 이었지만 나름대로 보람을 일구며 행복을 찾던 이상목씨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은 10여년 전부터였다. 갑자기 오른쪽 다리가 부어오르기 시작하고 또 부어오른 다리의 통증이 심해지더니 이젠 종기처럼 한곳한곳 헐어 염증이 생겼다. 고통을 참지못한 나머지 병원을 찾았으나 진단결과는 화상이었다.

화상치료약이 염증이 아물게 해주는 듯 했으나 또 다른 곳에서 불쑥불쑥 염증이 생겼다.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살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으며, 가끔씩 머리도 혼미해져 서너달 입원치료도 받았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시골이에 살다보니 고엽제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이상복씨는 "더구나 당시 함께 월남으로 건너갔던 전우는 보은에서는 없고 부산과 제주에만 2명이 있어 연락이 끊긴지도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런 이상목씨가 고엽제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해였다. 몸에 나타난 증상이 아무래도 고엽제와 연관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대한 해외참전전우회 군지부(지부장 류관형)의 회원들을 만나 고엽제 문제도 상의해 보았다. 고엽제 피해가 거의 확실해 보였다. 이렇게 1년이 지난 지난 14일 이상목씨는 청주병무청을 찾아갔다. 일반적인 군생활기록은 모두 있었으나 월남참전기록은 어디서도 볼 수가 없었다. 다른 일부 참전전우들의 기록도 마찬가지였다. 이상목씨는 전우회의 도움을 받아 청주 병원에서 진단서를 작성하고 상처사진도 찍어 정확한 검진, 치료를 위해 도지회에 서류를 제출한 뒤 많은 의문만을 안은 채 돌아왔다.

국가적 차원에서 고엽제 피해자에 대한 치료와 보상이 이루어 진다고 했으나, 이상목씨가 고엽제 검진을 받을 수 있을런지는 미지수이다. '80년 수해때 가지고 있던 전우들의 사진과 전쟁기록 등 모두를 잃어버렸고, 남은 것이라곤 썩어들어가는 몸과 왼쪽 어깨에 확연하게 새겨진 백마와 66.9.20이라는 파란 문신뿐. 남의 땅을 빌려 벼농사와 양잠을 하고 영세농가로 지정돼 정부양곡을 지원받고 있는 이상목씨. 부인과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오늘도 잠실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에 한때 월남의 정글을 헤쳐가던 씩씩한 병사의 모습이 겹쳐진다.


<금주에 만난 사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