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 소녀소녀가장 세대를 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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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 소녀소녀가장 세대를 가다<1>
  • 보은신문
  • 승인 1993.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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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잔소리가 그리워요" (보은읍 성주리 홍종필·승국 형제)
배가 고파 입을 벌린 새끼 새에게 어미 새는 자신의 뱃속에 넣어 두었던 먹이를 토해준다. 이렇듯 보살펴주고 감싸주는 따뜻한 부모의 손길을 받으며 한없는 행복 속에 생활하는 우리의 어린이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모두가 누리는 행복과 부모의 정을 받지 못하는 이웃도 많이 있다.

홍종필(16)·승국(14) 형제도 그 중의 하나이다. 천안에서 운전을 하던 아버지와 네 식구가 행복한 생활을 하던 중 아버지가 암으로 2년여 고생 끝에 세상을 떠나고 고향인 내속리면 구병리로 내려와 할아버지 댁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고아아닌 고아가 되어버린 두 형제. 고향에 자식들을 맡긴 어머니는 생활기반을 마련하는 대로 데리러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난 뒤 재혼을 해 아직까지 아무 소식도 없다.

그때가 종필이 9살, 승국이가 7살이던 해였다. 연로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종필·승국 두 형제까지 맡아 더욱 어려움이 커졌다. 생활이 어려워져 할아버지는 고향땅과 집을 팔아 4년전 보은읍 성주리 현재의 집으로 이사를 했으나 생활고는 여전했다. 더욱이 지난해 10월에는 할아버지마저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73세의 할머니와 두 형제만 남은 것이다.

거택보호 대상자로 지정돼 쌀과 연료비를 받고는 있지만 이들의 어려움은 늘 주변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종필·승국형제는 연로한 할머니를 대신해 밥도 짓고 빨래와 집안청소도 하면서 구김 없이 커 이제는 보은중학교3학년과 1학년의 어엿한 청소년이 되었다.

"다른 애들처럼 엄마가 있어서 공부하라고 야단맞아 봤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승국이. 이들에겐 야단칠 부모가 없고 다만 온화한 미소로 보듬어 주시는 할머니만이 있을 뿐이다. 이들의 딱한 모습을 알게 된 마을의 김정숙 부녀회장(48)은 두 형제가 올바르게 자라도록 정성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국민학교 졸업식에는 선물과 꽃다발을 들고 가 축하해 주었고, 매일매일 찾아와 야단도 치고 잔소리도 한다. "내 자식 못지 않게 크도록 하려 하지만 사춘기도 되고 생각도 깊어지니까 힘이 들어요.

불쌍한 현실이지만 자신들 세대를 스스로 이끌어 남 못지 않은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김정숙 부녀회장. 지난해 소년가장 세대로 지정돼 지원과 후원자도 생겼지만 쌀 20㎏, 보리쌀 3㎏, 연료비 5만6천원, 그리고 후원자가 보내주는 3여 만원으로 생활하기란 무척 어렵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한창 먹고 크는 나이에 참고 이겨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이러한 생활 속에서 두 형제는 또래 애들보다 생각이 깊어 그 누구에게도 자신들의 처지를 내색하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밝고 열심히 생활하며, 시간나는 대로 성당에 들러 기도하고 어른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도 하며 이겨나간다.

종필·승국이의 할머니(송순단·73)는 "능력이 없어 애들한테 제대로 못해주니까 마음이 아프다"며 "그래도 부녀회장이 모든 일에 신경 써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한다. "할머니께서 길에서 넘어져 뼈를 다쳐 6개월 동아이나 입원했었어요. 그 동안 잠도 재우고 큰 빨래도 해주며 지켜보니 두 형제가 착하고 어른스럽게 잘 이겨내더군요. 이제는 우리 부부를 부모처럼 잘 따라 기뻐요"라는 김정숙 부녀회장은 "종필이는 건강하지만 눈이 나빠 안경을 썼는데 학교 축구부에서 활동하느라 힘든 것 같아요.

또 승국이는 공부를 잘하지만 몸이 약하고 축농증도 있어 병이라도 고칠 수 있다면 좋겠어요"라며 부모 못지 않은 정을 보여준다. 동광국민학교 6학년에 전학 온 후 계속 축구를 해 지금은 보은중학교 축구부원으로 활동하는 종필이는 사회인으로 자라고 싶다고 하고, 공부에 열심인 승국이는 의과대학에 진학해 의사가 되어 아버지처럼 병든 사람을 무료로 고쳐주겠다고 장래희망을 말한다. 역경을 스스로 헤쳐나가는 종필·승국 형제에게 따뜻한 정과 이웃 애를 전해주며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발 우리들의 책임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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