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보건진료소 이금주 진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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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보건진료소 이금주 진료원
  • 보은신문
  • 승인 1993.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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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과 봉사를 실천
"사랑과 봉사라는 말은 너무 쉬우면서도 나 자신을 이끌어 스스로 실천하기는 힘이 듭니다. 진정한 사랑과 봉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4월7일 보건의 날을 맞아 만나 본 탄부면 매화보건진료소 이금주 진료원(38)의 생활철학이다.

보건진료소가 생긴'81년 9월 초창기부터 보은과 인연을 맺은 이금주씨는 군내 보건진료소의 역사와 함께 한 장본인이다. 이금시는 강원도 강릉이 고향으로 교육 자신인 아버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자랐으며 강릉간호전문대를 졸업, 묵호 성심병원과 서울 민증병원에서 7년간 간호원으로 근무하던 중 '78년 윤준열씨와 결혼했다. '81년 보건진료소가 생기면서 회남진료소로 발령받아 보은에 정착, 회북 고석진료소를 거쳐 '88년부터 탄부 매화진료소에서 살림과 진료를 함께 하고 있다.

"서울에서 병원에 근무할 때 남편을 만나 결혼한 후 함께 초임지인 회남보건진료소로 왔을때는 무척 힘들었어요. 겨울에는 이웃집 사랑방 두칸을 빌려 한칸은 살림방으로 한칸은 진료실로 사용했지요. 장비도 부족해 환자가 발생하면 오지의 산끝마을까지 산길·눈길을 걸어서 다녀왔어요. 그때 기억이 가장 잊혀지지 않습니다."라며 어려웠던 시절의 진료소 생활을 되새긴다. "그 당시는 교통이 안좋고 병원도 가깝지 않아 가정에서 출산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밤새워 아기를 받은 적도 있고, 분만 때는 열흘 정도 매일 들러 뒷바라지를 해주었죠. 그때 아이들이 자라서 국민학교에 다닌 것을 보면 큰 보람을 느껴요"라며 밝은 미소를 짓는다.

"전국 의료보험이 시행되면서 농촌 주민들도 병원을 많이 찾아 진료자수는 줄었지만 노인이 많은 농촌에서는 아직 많은 역할을 맡고 있어요. 쉴새없이 움직여야 하는 농민들이고 연로한 관계로 많은 주의가 필요하죠"라며 농민의 고충을 안타까워하는 이금주씨는 "혼자 근무하고 있어 가정방문때는 문을 잠그고 가야하기 때문에 진료소에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분들이 많아요.

보조원이라도 배치된다면 좀더 나은 진료가 가능할 것"이라고 바램을 말하면서 "이제 노인 건강문제 등 보건사업에 투자를 늘려야 하는만큼 자체 약품구입이나 진료소 운영에 매달 지원이 된다면 보다 효과적인 진료사업이 이루어 지리라 본다."고.

주민들이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 가을에 거둬들인 채소로 김장을 담가올 땐 정말로 이웃의 정을 실감한다는 이금주씨는 요즘 하루 7∼8명정도를 진료하고 있다. 인근 국민학교와 관할 구역외의 지역도 마다 않고 쫓아가는 이금주 진료원은 이렇듯 열성적인 노력으로 지난 '91년에는 국민보건향상에 공적을 인정받아 보사부장관상을 수상하였으며, 고석리에서 매화진료소로 옮겨올 때는 고석리 주민들이 감사패를 전달해 주기도 했다.

꽃꽂이가 취미라는 이금주씨는 윤준열씨와 사이에 중1, 국4학년인 두 딸을 두고 오늘도 탄부면 서부지역 9개부락 1천여명 가까운 주민들의 건강을 생각하며 하얀옷의 천사로 아름다운 마음의 보석을 다듬으며 살고 있다.



<금주에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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