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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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사람들...
  • 송진선
  • 승인 1993.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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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는 군내 36명의 미화요원을 만나다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사람들은 무더지기 쉽고 그 가치까지 잊게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그러한 사람들이 잠시라도 우리 곁을 떠나면 잘 맞물려 돌아가던 세상사 톱니바퀴가 어긋나기 시작해 비로소 우리는 그들의 소중함을 새삼 실감 하게 된다. 주변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치워주는 미화요원들의 존재가 바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래서 새해 새아침을 여는 미화요원들을 만나 새해 소망과 함께 그들의 어려움과 보람 등을 들어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곤히 잠든 새벽녘 샛별조차 졸음에 겨운 첫 새벽에 찬 공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미화원들은 일용잡부 취급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책임을 다하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3시만 되면 골목골목에서 비질 소리가 들리고, 수북이 쌓인 쓰레기를 치우는 일로 오후 4시까지 하루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시작한다. 보은읍 20명, 내속리면 12명, 마로 삼승 회북 내북면에 각 각 1명씩 총 36명이 매일매일 해당지역의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일요일이나 경축일, 국경일 등 공식휴일에도 쉬어본 적이 없고 그래서 친인척의 애경사에 참석하기조차 힘든 이들에게 1년 열두달 동안 쉬는 날이라고는 신정, 설날, 추석 단 3일간 뿐이다.

그런데도 하루라도 쓰레기를 안치우면 주민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또 이미 수거한 후에야 쓰레기를 내놓고는 왜 쓰레기를 안치우느냐며 전화를 걸어 호통치는 사례도 있는가 하면, 다음날 직접 주민이 나와 삿대질하면서 항의하기 일쑤라고. 그러나 무엇보다 쓰레기 수거를 하루라도 거르게 되면 태산같이 쌓이는 쓰레기를 수거하는데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 배정 은 자기구역은 어떤 일이 있어도 치워야 하므로 몸이 아파도 아침시간에는 꼭 일을 나가고, 정말 힘이 들 경우 오후시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동료들이 서로 배려해 주는 희생정신을 발휘한다. 그런데도 일용잡부 취급밖에 못 받는다며 아숴워하는 그들은 미화원을 기능직 공무원으로 전환시켜 주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새벽 3시에 일을 시작해 하루 작업의 절반을 새벽에 모두 끝내게 되는데, 이는 낮에 일감이 밀리지 않도록 바삐 서두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주민들이 출근하기 위해 거리를 나섰을 때 깨끗한 거리를 보고 하루를 깨끗하게 상쾌한 가운데 시작하게 하기위함"이라고 보은읍 미화원 반장인 박수길(51)는 말한다. 청소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골목에는 리어커로 쓰레기를 수거해 론놀박스에 채우고 나면, 새벽 5시30분경 청소차가 돌면서 대로 및 간선도로변에 모아져있는 쓰레기를 수거하고 다시 리어커가 모아놓은 론놀박스의 쓰레기까지 치우고 나면 보통 오전 8시에서 8시 30분이 된다. 아침일을 마친 미화요원들은 다시 9시에 출근해 11시까지 맡은 구역의 청소를 하고 점심식사 후에도 4시까지 거리의 오물을 치운다.

미화원들이 하루에 수거하는 쓰레기 통 97.60통으로 이중 78.84톤이 매립된다. 군민 한사람이 하루에 버리는 쓰레기양이 약 1.77kg이 되는 셈이다. 과거보다 연탄사용이 줄어 연탄재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연탄재와 김장쓰레기 때문에 여름철보다 겨울에 쓰레기가 많은데 군내에서 쓰레기가 제일 많이 나오는 지역은 상가와 식당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삼산1구와 5구라고 지적한다. 이곳에서는 주택가 쓰레기보다 50%정도 더 양이 많아 차량조 미화원들이 이 지역의 쓰레기를 청소차 적재함까지 들어 올리다보면 허리를 다칠 경우도 있고 힘이 부쳐 쓰레기를 몸에 쏟는 경우도 있다. 리어커조는 15일에 한번씩, 리어커조와 차량조는 3개월에 한번씩 바꿔 작업에 경중을 주고있으나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된 요즘은 과거보다 쓰레기가 훨씬 많아져 인력과 장비의 보강이 시급한 형편이다.

몇 해전부터는 유행이 지난 옷을 쓰레기라고 버리거나 한동안 더 사용할 수 있는 유모차와 세발 자전거 등을 집안에서 쓰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버리는 등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쓰레기가 적잖게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재활용하고 아껴쓴다면 쓰레기는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하는 그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재활용품을 수거해 팔면 하루 담배값 정도는 생긴다고 귀뜸한다. "얼마전에는 반지가 들어있는 반지곽을 쓰레기와 함께 버려 사무실로 찾아달라는 전화를 해와 미화원들이 모두 출동해 쓰레기 매립장을 뒤져 찾아준 적이 있다"고 회고하는 홍순형씨(52)는 무조건 버리고 보는 주민들의 그릇된 인식이 고쳐져야 된다고 말한다.

이점은 미화원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것으로 새해에는 낭비의식이 척결되어, 궁극적으로 쓰레기 양이 줄어들 것을 소망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들이 주민들에게 부탁하는 점은 우선 쓰레기를 한곳에 잘 모아 줄 것과 쓰레기통이나 봉지에 싸서 버려 달라는 것이다.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노상에 버리면 수거도 깨끗하게 되지 않고 바람에 날리거나 흩어져 언제 청소했나 싶게 지저분해 지기 때문이다. 또한 쓰레기 분리수거가 효율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만큼 내년 용암 쓰레기 매립장이 완공되면 철저히 분리수거가 되어야 하므로 론놀박스가 있는 지역에는 두 개씩 설치해 철저한 분리수거가 되도록 행정기관에의 바램을 말하기도.

보은의 쓰레기 처리 역사와 함께 한 이들 미화요원들은 요즘과 같이 더러운 것을 기피하는 현상으로 인해 미화원으로 일하는 젊은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그들은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 집 쓰레기를 잘 치워줘서 고맙다며 내의, 양말, 손수건 등을 건네는 주민들의 격려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쓰레기 리어커를 글 힘이 없을 정도로 녹초가 되어도 주민들의 고맙다는 격려인사에 새 힘이 솟아오른다. 깨끗하게 치워도 곧 지저분해지는 거리에서 이들은 여전히 모든 이가 곤히 잠든 새벽을 조용히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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