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속리면 사내리 김기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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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속리면 사내리 김기철씨
  • 보은신문
  • 승인 1993.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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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복조리의 맥을 잇는다
응장하고 신비로운 속리산 골짜기를 드나들며 대나무를 잘라 모아 40여년간 복조리를 제작하며 살아온, 내속리면 사내 3구 민판동 마을의 김기철씨(60). 일찌기 민판동은 속리산 골짜기에서 자라는 대나무를 이용한 복조리 제작이 대대로 전해져오는 마을이다. 김기철씨가 태어난 곳은 삼승면 상가리이지만 해방되던 해인 14세때 부모님을 따라 이곳 민판동으로 이사해, 어려서부터 이곳 마을의 생업이던 복조리 제작을 대하게 된 것.

지난 시절에는 복조리가 모든 가정에서 사용되어 판매에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지만 요즘은 사용하는 가정이 없어 제작도 거의 하지 않는 실정이다. 그래서 조상 대대로 이어오던 조리제작도 이젠 생업으로 할 수가 없어 농사나 가축기기로 생업을 삼고 잇다. 김기철씨도 마찬가지여서 3천여평의 논밭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옛집터에서는 소막사를 지어놓고 11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다. 이 마을에서도 복조리 제작을 하지 않는 집이 다수여서 김기철씨가 그나마의 맥을 이어왔지만 올해에는 주문이 없어 시작도 하지 못한 형편이다.

"이제는 조리의 이름도 복조리라고 부르죠. 전에는 일상 생활용품이었지만 지금은 학생이나 단체에서 기념품으로 주문해 벽에 걸어놓는 용도의 복조리에 지나지 않아요"라며 김기철씨는 "복조리를 제작하는 대나무는 골짜기에 가면 충분히 있지만 판매가 되지 않기 때문에 만드는 집이 없다"고 아쉬워 한다. 온가족이 모여앉아 복조리를 만들던 지난 시절에는 하루 1백여개 정도를 제작, 개당 5백원씩에 팔려 농가 부업으로 1백여만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었지만 그것도 이젠 먼 옛날의 이야기이다. 김기철씨 집에는 지난해 만들어 놓은 복조리가 50여개 있지만 이젠 판매도 안되고 찾는 이도 없다.

"마을 주민들이 골짜기에 들어가 대나무를 해오는 모습이다. 집집마다 모여앉아 복조리를 만드는 모습이 아름다운 정취를 풍겼지만,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라 못내 아쉽고 대대로 이어져온 복조리의 맥이 끊기고 있어 더욱 아쉬움이 크다"고 말한다. 민판동 골짜기에서 자라는 1년생의 곧은 대나무만을 골라 네조각으로 쪼갠 뒤 잘 건조시켜 물에 담가 부드럽게 만든 뒤 서로를 엮어나간 복조리. 특히 속리산 복조리는 무주나 안성조리 보다도 품질이 좋고 모양도 다르다. 이들 조리는 뒷부분을 머리땋듯이 해서 올려 묶지만, 속리산 조리는 뒷부분을 곧게 해서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민판동에 살며 절로 몸에 배어 익혀지던 복조리에 대한 생각과 제작법이 이젠 서서히 그 맥이 끊기고 있다. "비록 장식품으로 남더라도 복조리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고 우리들 가슴에 진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김기철씨는 "새해에는 민판동 주민들도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관광지인만큼 복조리의 제작과 판매에 적극적인 개발과 투자가 이루어질 바란다"고 말하기도. 민판동 소막사에서 소먹이를 마련하면서 김기철씨는 복조리를 찾는 이들이 다시 마을에 줄을 잇기를 기대해 본다. 김기철시는 부인 장수복씨(58)와 3남2녀 중 출가하지 않은 막내딸, 손주들과 함께 오늘도 전통의 맥을 잇고자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다.


<금주에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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