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와 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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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와 수분
  • 보은신문
  • 승인 1992.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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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춘(문화원 사무국장)
여리게만 느껴지던 식물들도 어느덧 폭염에 익숙해져 미동없이 가뭄을 떠받치고 있다. 얼마의 세월들을 나와 저 초목들은 세상의 변화에 담보한 채 의미없이 떠밀려 왔을까? 창조 이래 얼마나 수많은 인간들이 자기를 모른채 인간들이 자기를 모른채 물안개 같은 순간의 삶을 지나쳤을까?

이 자리는 '생각하며 삽시다'라는 공간이라한다. 참 좋은 제목의 자리라 생각된다. 오늘은 분수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분수는 사물을 분별하는 슬기, 자기에 알맞는 한도이다. 수십억이 살고있는 이 땅 위에서 모두가 자기의 분수만큼만 살아준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일까 하고 생각하니 왜이리 내가 밉고 창피한지- 고개가 떨구어진다.

지나간 삶들에 대하여 우리는 흘러간 시냇물과 같다 하여 그냥 지나쳐 버린 것 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자신의 한도를 얼마만큼이나 알고 지키려 했는지 꼭 생각해봐야 되겠다. 무어 그리 남들 눈의 티는 보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분수없이 살아들 왔는지…

그래! 어쩌면 인간은 생각을 할 수 있기에 불쌍한 동물인지도 모른다. 허나 이제 관직이 높은 사람이나, 많은 재물이 있는 사람이거나, 명예가 있는 사람이나, 행여나 자신의 분수가 그 만큼은 하다고 철딱서니 없이 작은 분수의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는 일은 없는지 생각해 본다.

사람은 과거를 먹고 산다고들 한다. 과거란 미래의 반대용어가 아니라, 시작과 끝의 한마디일 뿐이다. 자동차의 백미러는 뒤를 보기위해서 있는 것만이 아니라 좀더 앞을 향해 무사히 달리기 위한 필수품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지나간 날들이 자기의 분수그릇을 올바로 아는 소중한 시험대였음을 간직하고, 앞으로의 삶이 각자의 분수를 인생속에 수분 할 수 있는 삶이 된다면, 자신에 대한 미움과 창피함에서 해방될 수 있으며 작은 이 삶의 터전에 있는 모든 이들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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