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더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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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 존경합니다
  • 오계자(소설가)
  • 승인 2025.07.03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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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살이 번지기 바쁘게 참새들이 합창으로 재촉을 하면 더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다. 이 꼬맹이들의 수다는 저녁에 이내가 내릴 때까지 이명처럼 들어야 한다. 침대에 누운 채 동창을 열면 벌써 똘망똘망 재잘재잘 너무나도 바쁘다. 참새의 특징은 앉아서조차 0.1초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연신 이쪽저쪽 바쁘게 살핀다. 
뒤쪽으로 덧붙여 지은 보일러실 지붕아래는 틈틈이 참새집이다. 뒤꼍 밭에 잡초 뽑느라 호미질을 좀 해놓으면 참새들은 먹이 밭 헤집어 놓았으니 더 바쁘다. 오늘 아침엔 꼬맹이들 때문에 기지개 켤 겨를도 없이 호미로 좀 파헤쳐 줬다. 
내가 앉아 있는데도 겨우 2~3m 여유 두고 내 주위에 모여 조잘조잘 들락날락 난리들이다. 곁에 앉아서 살피다가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분명 주둥이는 무언가 물고 있는데 가슴목덜미 가 옴짝옴짝 하며 짹짹거리는 소리를 낸다. 입은 그냥 소리를 내보는 통로일 뿐인가 보다.
참새에 넋을 빼앗기면서 뽑은 잡초를 버리려고 보니 수박 모가 한포기 섞여있다. 지난해 심지도 않은 참외와 수박이 저절로 둬 포기 자라서 심심찮게 따먹은 것이 재밌어서 올해는 모종을 세포기 씩 사다 심었다. 덤으로 수박 모가 한포기 더 생긴 거다.  
나는 수박 모를 심을 때마다 씨 없는 수박과 동시에 우장춘 박사님이 생각난다. 그분의 기막힌 가족사는 역적과 애국, 극과 극이다. 
부친이 을미사변(명성왕후 시해사건)에 가담했던 조선군2대대장 우범선이기 때문이다. 사건 후 일본인 아내와 같이 일본으로 망명했지만 명성왕후를 경호하던 고영근에 의해 암살 되고 조선의 매국노라는 주홍글씨가 영원히 우범선 명찰에 붙어있다. 
어린 아들 우장춘은 어려운 가정형편이지만 반듯하게 자라서 아버지의 업적으로 조선총독부 학비지원을 받아 도쿄제국대학농과대학 실과를 졸업한다. 
해방 후, 아사자가 속출하는 한국으로부터 식량해결에 도움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분은 주변 지인들의 만류와 매국노의 아들이라는 비난을 각오하고 진심 한국의 농업 진흥에 뜻을 품고 한국행을 선택했다. 훗날 그분의 말은 발전 없는 한국의 농업이 너무나 안타까워 불러주지 않았어도 오고 싶었다고 했다. 물론 아버지의 반역죄에 조금이라도 속죄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초대 농업과학 연구소장, 초대 중앙원예 기술원장, 초대 원예시험장장 등 한국농업발전에 열중했다. 
대한민국해군 소령으로 전역해서도 많은 업적이 있어 대한민국문화포장, 대한민국과학기술 유공자 등 정부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대한민국 2호 농학박사다. 
유체는 배추와 양배추의 자연교잡종임을 밝히고 세계최초 종의 합성과 중간잡종에 관한개념을 발표함으로서 국제적 농업과학기술자가 되었고 코리아의 존재를 알렸다. 
농업발전에 기여도가 높으니 아버지를 향한 비난이 아들그늘에 묻혔다. 그냥 묻어 두는 것이 아니라 일부에선 그 입장을 해명까지 한다. 하지만 조선 국모의 시해를 도왔다는 것은 역적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아들이 아버지의 속죄를 말로만 비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몸 바쳐 나라에 이바지 했으니 아버지를 헤집어내지 말자는 것이 당시 여론이었다. 
대부분 부모의 장단점을 자식들이 비슷하게 닮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경우에 따라 부모의 단점을 명심하고 반대로 옳은 길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고맙게도 울 아들이, 담배 때문에 건강을 잃은 아빠를 보며 얼마나 결심을 했는지 사춘기 시절에도 담배는 입에 대지 않았다. 심지어 친구들도 적극적으로 말려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가 하면 고등학생 때는 골초 담임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아빠의 건강상태를 설명하고 진심으로 애를 쓰는 바람에 끊었다는 담임의 전화를 받고 아들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우장춘 박사 역시 이름 뒤에 따라다니는 매국노 아들이라는 주홍글씨가 얼마나 아픔이었을까. 보통사람이라면 한국 쪽으로 고개도 돌리기 싫을 터다. 조선의 매국노는 일본의 영웅이다. 부친은 일본에서 훈장까지 받았으니 아들이 정부지원 받으며 전공을 살려 연구할 수 있고 대접받으며 살 수 있지만 비난을 각오하고 한국으로 오셔서 대한민국농업 진흥에 크게 이바지 하셨다. 대한민국의 농업 진흥을 꿈꾸던 그분의 마음은 진심이었다고 한다. 그의 용기에 감사하고 그래서 더 그분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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