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게재한 내 에세이 제목이 대립과 조화였다.
현악기의 생명이나 다를 바 없는 매력이 아름다운 울림이다. 가문비나무로 된 몸통 속 공명은 분명 현의 진동 소리에 방해가 된다. 하지만 공명과 현의 진동이 대립 상태에서 어느 한쪽을 배재하는 것이 아니라 잘 조율하므로 현의 진동은 적당한 울림으로 매력적인 조화를 이룬다.
오늘 나는 절대 조화를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은 대립상황에 맞닥뜨렸다. 지체부자유 3급인 내가 감히 용기 내어 미황사 백팔계단에 도전했다. 돌계단은 묵묵히 그대로인데 괜히 나 혼자 이러쿵저러쿵 심지어 도전이라는 말까지 하면서 겁을 먹은 것이다.
물론 인송문학촌 토문재에 입주한 작가님들의 보이지 않는 응원에 힘입어 용기를 낸 것이지만 맘 한쪽 살짝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다. 나이도, 지체 장애도 다 잊어버리고 젊은 작가들과 계단틈새 작은 야생초에 관심을 주며 폰의 카메라 셔터도 누르고 계단의 숫자 헤아리기까지 즐겁게 오르다보니 진짜 내 약점들을 다 잊은 듯 멀쩡하게 성공했다. 확실히 젊은 작가들의 氣, 그 응원의 힘이 대단했던 것이다.
전부터 내가 기氣를 참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다. 氣는 바람과 구름 즉 기상을 의미하기도 했고 천기天氣와 지기地氣가 함께해서 곡물이 성장하므로 고대인들도 氣를 아주 중요시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나는 자식을 키운 어미로서 자식에게 주고 싶은 것은 황금보다 정신력, 즉 기운氣運이었다. 단순 energy라든지 tide보다는 정신력, 우주의 기운이라면 좀 과한 표현일까. 그랬던 내게 어느 날 아들이 “엄마, 저희들은요 모든 면으로 가정교육이 잘 되었다는 걸 살면서 느끼는데요, 한 가지 좀 소홀하셨던 면이 있어요. 우리 남매는 돈에 대한 개념이 너무 없어요.”
그 말을 듣고 그렇구나, 나 자신의 약점인 그 영향이 자식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미처 생각 못했다. 그래도 나는 금전보다 氣가 더 중요 하다고 말하고 싶다. 오늘 젊은 작가들의 곁가지 기운에도 이렇게 생기가 솟구쳤지 않은가.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신청해서 어렵게 선정되어 여기 인송문학촌에 입촌했는데 내가 주위 아름다운 환경에 빠져 창작에 개을러지는 것은 아닐까 한쪽마음이 염려한다. 또 다른 마음은 잡동사니 잡생각들부터 씻어내는 것이 필요하단다. 후자를 선택했다.
맑은 공기, 탁 트인 바다전경, 조용한 환경에 저절로 영혼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입주 작가들끼리 매일은 아니라도 어쩌다가 한두 시간 봄나물 뜯어 부침개 해서 먹거나 바닷가 모래사장 걷기 하며 작가들끼리 맘 문 열고 소통하는 것이 참 좋다. 여기 오래 있으면 영혼이 맑아질 것 같다.
생각해보니 계단은 누구나 딛고 오르내리라고 존재하는 것이고, 108계단이 원하는 대로 올랐으니 나도 오늘 멋진 조화를 이룬 것이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감춘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첫 계단부터 숫자를 헤아리며 올랐다. 계단의 숫자가 108은커녕 명칭보다 수십 계단이 더 많음을 알았을 때 무릎을 쳤다. 창피하게도 내가 108이라는 숫자에 연연했구나, 백팔이면 자연스럽게 번뇌를 연상했어야지 나의 우매함이 젊은 작가들 앞에서 창피했다. 숫자 헤아리느라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번뇌를 풀어놓지 못하고 도로 꽁꽁 싸매고 온 꼴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변명이라고 하는 말이 “번뇌는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야, 오늘 나는 극복한 거야.” 젊은 작가들 앞에서 괴변을 앞세워 창피함을 무마하려 했다. 요즘은 생활 자체가 마치 신선이 된 듯 마냥 취해서 나를 잊고 환상 속에 있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동살이 번지는 시간을 커턴 틈새로 알리면 반갑게 일어나 방문을 열면서 폐부 깊숙이 들이마신 아침공기를 잔잔한 앞바다를 향해 내뿜는다. 기지개를 켜다가 마당 끝 문돌이에게 들켰다. 미남 문돌이가 꼬리를 흔들며 재치 있게 저도 따라 하품을 한다. 처마 끝 풍경이 박수를 친다. 비가 오는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우리의 아침인사는 변함없다. 이렇게 매일 번뇌를 씻고 있으니 따로 내려 놓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을사년 오월 땅끝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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