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의 불안한 갈등과 사태 속에서 혼란스러웠던 겨울도 지나가고, 우주만물의 에너지를 얻은 우리네 가슴마다 꽃들이 피어나는 봄이다. 지천으로 피어난 꽃무리와 화답하는 시어들의 노래로 4월은 이다지도 따스한가 보다. 새 학년에 적응하고 있는 아이들도 인성교육의 첫 단추를 살펴줘야 할 달이다. 어린 영혼들이 윤택하고도 희망찬 봄날이 되길 소망하면서, 인성교육의 첫 단추인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기로 한다.
전 세계 국가에서 인성교육에 대한 목소리는 언제나 높았으나, 인성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즉 인성교육의 메뉴는 나날이 다양해져 가지만, 인성의 본질에 대한 결론은 아직도 헤매는 중이다. 먼저 우리 동양적인 철학면에서 들여다보면, 인간이 선하다고 주장하는 성선설(性善說:맹자, 장쟈크 루소)과 악하다고 주장하는 성악설(性惡說:순자, 홉스), 그리고 야누스적 존재(선과 악의 양면성)로 나뉘어진다고 한다. 한민족 또한 인간의 본성을 천성(天性)이라고 보는 유교적 인성을 추종하였으며, 사람이 갖추어야 할 표준과 격식을 제대로 함양한 인간을 좋은 인격체로 여겨왔음이다. 즉 인성교육을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본성에 대한 치유’로 접근하였으며, 도덕교육으로 함양된 인성교육을 통해서만 올바른 인격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도덕적 규범이 한민족의 인성교육에 결정적 공헌을 한것도 명백한 사실일 것이다.
여기에 도가(道家)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상태를 주장한 노자. 장자의 철학적인 면을 추가해 본다. 즉 인간이 아무런 가식이나 이기심이 없는 '참나’(眞我)의 본성을 인성으로 자리매김하는 견해인데, 여기에서 주목할 관점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본래 이기적인 존재이며, 그 이기심이 바로 경제과학과 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설(說)이다. 내가 교육 현장에서 그나마 접근이 수월했던‘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성에 대한 설명’도 덧붙여 보겠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 하나의 가능태(potentiality)의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그가 선한 인간이나 악한 인간으로 될 것인지는 누구도 가늠할 수 없으며, 오로시 아이에게 주어진 주변환경, 체험학습, 주변인물과의 관계에서 정립된다는 견해이다, 그리고‘이기적인 현실태(actuality)를 고쳐 보려는 노력 그 자체가 인간 됨됨이를 결정한다’는 논리라 하겠다. 맹모삼천지교의 교육환경, 참된 부모와 스승과의 만남, 지혜로운 체험학습의 선택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방향성으로 보았다.
그럼, 인간의 이기심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이기심은 도대체 어디에서 만들어질까! 인성의 바탕에 숨어있던 사악한 욕망이란 놈이 인성을 덮쳐버림으로써, 나 이외에 타인의 존재를 망각하고 부정한다는 설이 답변(答辯)이다. 세상을 제것으로만 가득 채우려는 소유욕이 얼마나 허망하고, 인성을 부패시키는지를 우리는 이번 국정마비 속에서 절감하였다. 한 나라를 통째로 제 손아귀에 넣으려는 마수와 같은 이기심의 출현, 인생관. 국가관. 세계관이 극단적으로 잘못 형성된 사례라 하겠다. 대한민국 정치인의 대다수가 국민을 '섬기고 순응'하기 위함이 아니라, '지배하고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 것임을 말이다. 그 본성속에 숨어있는 이기심과 욕망에서 벗어나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정신으로 국민들에게 속죄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을 것이다.
이런 중대한 시점에서도 아이들은 다시 희망의 4월을 맞이하였다. ‘나 하나만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인생과 불행은 상관없다’는 벌레먹은 이기심이 형성되지 않도록, 밥상머리에서 인성의 첫 단추를 잘 잠가줘야 할 시점이다. 어릴적에 인지된 가정적, 사회적인 큰 사태들이 인성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가 있기에, 반드시 올바른 관(觀)을 정립시켜 줄 책무성이 있을 것이다. 미래 세대만큼은 서로의 행복을 바라는 이타적인 모습으로, 별처럼 빛나는 존재로 서로 박수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태초에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서로 도우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라’는 계시처럼 말이다. 식탁에 가족들의 수반을 먼저 올리는 어머니처럼~ 자신을 먼저 비추지 않는 저 동녘의 태양처럼~ 그리고 바라보는 이를 위해서만 피고나 지는 저 봄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