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에 울려 퍼진 3.1 만세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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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에 울려 퍼진 3.1 만세 소리
  • 나기홍 기자
  • 승인 2025.03.06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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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들렸는지 모르는 3.1절 만세 소리가 우리 보은에도 울려 퍼졌다.
삼일절인 지난 1일 보은읍 중앙사거리에 운집한 500여명의 군민들이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중앙사거리에서 뱃들공원 광장까지 행진히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졌다.
 행진하는 어린아이, 청소년, 사회단체는 물론 90세에 가까운 호국보훈단체 회원과 참전용사들의 손에손에 태극기가 들려있었고 얼굴에는 나라 사랑의 기색이 역력했고, 만세 소리는 나라 발전의 염원이 가득했다.
 오랫동안 우리 보은군에서는 3.1절이 되면 집집마다 태극기를 걸고 보은읍 죽전리의 남산 충혼탑을 찾아 조촐한 의식으로 호국영령의 넋을 기려온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보은에서 3,1 만세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그것도 길거리에서 500여명이 넘는 군민들의 함성이...
 보은에서 태어나 살아온 지 63년을 넘어서는 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역사적 모습은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
  3.1절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불꽃을 피운 날로 지금으로부터 106년 전인 1919년 3월 1일 일제강점기 조선 민족이 독립을 선언하고, 전국적으로 만세 운동을 펼친 독립운동의 시발적 사건이다.
 3.1 만세운동이 일어나던 1919년은 1910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합한 후, 토지와 경제를 장악하고, 한민족의 문화를 탄압하며, 언론과 교육을 철저히 통제하는 혹독한 식민 통치를 할 때다.
 당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발표하며 식민지 국가들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강조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의지를 가진 선각자들의 독립 요구 목소리가 커져가던 중, 고종 황제의 갑작스런 서거는 국민들의 독립운동 필요성을 더욱 자극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손병희 선생을 비롯한 민족 대표 33인이 1919년 3월 1일, 서울의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독립 선언이 발표된 후 학생과 시민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고, 이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농촌과 도시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조선인들이 참여했으며, 해외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통틀어 우리는 3.1운동이라 하고 있다.
 일본군과 경찰은 무력으로 시위를 탄압했으며, 유관순 열사와 같은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항쟁에 나섰다.
 비폭력 평화운동이었음에도 일본군의 강경 탄압으로 수천 명이 희생되고, 수만 명이 체포됐다.
 그러나 3.1운동은 조선 민족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후 국내외에서 무장 독립운동이 활발해졌고, 대한민국이 결국 1945년 해방을 맞는 밑거름이고 씨앗이었다. 
3.1절이 지났다.
 106년 전 독립을 위한 국민들의 한목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서울의 여의도, 광화문, 마로니에 광장에서는 10만명 이상의 국민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가 펼쳐졌고, 안국동 사거리에서는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펼쳐졌다. 
 나라를 지키다 스러져 간 애국열사들이 개탄할 일이다.
 106년전 3월1일 전 세계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를 잊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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