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음. 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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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음. 제비꽃    
  • 김종례(문학인)
  • 승인 2025.03.06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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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봄샘 추위 제1피켓을 꽂아놓고는 힐끔힐끔 뒤돌아보던 2월도 지니갔다. 봄바람에 떠밀리면서 아직은 이르다고 푸념 중이나, 3월의 봄하늘이 환하게 열리면서 봄의 정서가 우주를 채우는 중이다. 피날레로 다녀간 산봉우리 잔설이 비릿하게 흐르면서, 대지위에 작란의 불씨를 피워내는 요즘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신음소리에 우주와 사람이 하나가 되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작은 정원에도 나목의 가지를 흔들어대며 경칩을 기다리던 텃새들. 나도 햇볕바라기를 하면서 매화나무 앞에 서노라니, 첫사랑처럼 피어나는 시어들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잔디밭 돌다리를 건너다가 언뜻 보랏빛 몸짓이 눈길을 붙잡길래,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니 아, 제비꽃이다! 예로부터 오랑캐꽃. 가락지꽃, 반지꽃, 장수꽃, 병아리꽃, 외나물꽃 등 별명과 이름이 참 많은 꽃이다. 신입생 입학할 무렵에 봄나물을 캐는 아낙네들에게 들켜버리곤,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에서 첫사랑을 떠올리던 꽃이다. 풀꽃 중에는 제일 먼저 찾아와 작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얼굴. 괜스레 어릴적 동무들 생각나서 눈시울 붉게 만드는 추억의 꽃이다. 여기저기 척박한 돌틈이나 잔디밭, 길가, 심지어 두엄밭까지 무리지어 피어나, 보랏빛 연서를 띄우는 풀꽃에게 찬사를 보내는 이유들이 많다. 
  첫째, 제비꽃은 겸손을 가르치는 지혜의 꽃이다. 우리에게 몸을 최대한 낮추고 허리를 구부리고 고개 숙이게 한다. 세상을 혼자서 휘어잡을 것 같이 용트림하는 이기적인 독점가도 많지만, 결국 인간은 초라하고 허무하기 그지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기에 땅바닥에 납짝 웅크리는 제비꽃을 보내셨나 보다.‘인간에게는 세 개의 손이 필요한데 오른손, 왼손, 그리고 겸손이라고 한다.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자만, 다른 사람을 무시해 버리는 오만, 힘없는 자들을 업신여기는 교만, 남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거만, 이 4만의 형제를 다스릴 수 있는 건 오직 겸손이라고 한다.’ 故 추기경님의‘바보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밀알의 말씀처럼, 우리에게 숨겨놓은 지혜를 깨우쳐 주는 꽃이다. 
  둘째, 제비꽃은 봄날의 첫 선물이다. 가슴을 파고드는 산골짜기 흘러내리는 물소리에 깨어나서, 겨울의 터널을 막 빠져나온 이들에게 주는 봄날의 첫 마음이다. 대낮의 소란스러움 속에서는 보이지 않다가도, 호젓한 해거름에 차분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에게만 보이는 기도같은 꽃이다. 작아서 발에 밟히거나 무너지기도 쉽겠지만, 캄캄하고 메마른 세상에서 드리는 간절한 기도같은 풀꽃이다. 제비꽃은 매일 대하는 햇볕. 새소리. 맑은 바람처럼 소확행을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무엇보다도 이 지구에 와서 만난 그대와 내가 선물이듯이, 유난히 왜소하여 가여운 풀꽃! 너 또한 우리에게 정녕 귀한 선물이리라. 
  셋째, 제비꽃은 희망을 노래하는 꽃이다. 냉이, 씀바귀, 별금다지와 함께 삭막한 겨울의 강을 건너와서, 혼신을 다해 피어난 강인한 꽃이다. 작고도 여린 몸짓으로 ‘봄이 왔어요. 봄 배달 왔어요’라고 외치며, 점점 웅크리는 내 가슴에도 희망과 기쁨을 던져주니 말이다. 한 알의 겨자씨가 아름드리 거목으로 자라듯이, 구석방에 묻혀있던 무명용사가 나라를 살려내듯이, 연약하고 가냘프지만 제일 먼저 봄소식을 전해주는 첫 마음이다. ‘아, 이다지도 가슴뛰는 봄날은 다시 왔어라. 세상의 희망은 오늘부터 시작되어라’며, 초로의 주름져가는 얼굴도 새삼 환하게 밝아졌으니, 이 또한 얼마나 눈물겹고 기쁜 봄이 될 것인가! 
  오늘은 정원의 돌다리를 건너다가 왕제비꽃 군락에 마음을 빼앗긴 반나절이었다. 불모지 같은 내 영혼에도 다시 봄날은 찾아와서, 축복처럼 천지를 물들일 봄의 물살에 흡수된 하루였다. 인간은 풀꽃 한 포기 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알게 하였으며, 다시 어우렁더우렁 살아볼 희망의 촉을 틔우게 한 제비꽃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답례로 풀꽃 사랑을 띄워 보낸다.‘찬바람 불고 서릿발 섬뜩했던 겨울의 강을 건너와서, 春雪이 발치에서 모질게 떨어가며 봄을 기다렸구나. 양지바른 풀섶에서 미소만큼 애처로운 풀꽃 하나 피었구나. 인생도 한 떨기 작은 풀꽃이런가 ~ 비바람에 시달리며 완주하는 생이런가 ~ 흔들거리며 살아가긴 마찬가지야. 삶의 향기가 꽃보다 고운 풀꽃처럼, 왜소해도 강인한 풀꽃처럼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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