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자수 이만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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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자수 이만길 씨
  • 보은신문
  • 승인 1991.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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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년을 한결같이 - 상(床)은 벗삼은 인생여정
36년간을 한결같이 산을 팔러 다니며 엮어 온 긴 인생여정…… 세속의 더러움과 결탁하지 않고 어떤 특별함도 삶의 넉넉함도 거부한 채 그저 좋아서 상(床)을 등에 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고을고을의 정취를 음미하며 상을 팔러 다니는 방랑자 이만길(54)씨. 보은에 뿌리를 내린 사람이라면 '아! 이사람'하고 누구나 쉽게 알아보는 상 장수 이만길씨는 산외면 산대리가 고향으로 18세 때부터 고을고을을 다니며 상과 함께 후덕한 인간미로 삶의 풍요로움을 즐기는, 진정 마음이 부유한 사람이다.

집안의 아저씨가 보은에서 상공장을 크게하여 그 영향으로 상하고 인연을 맺어 이 일을 시작했다는 그는 지금은 중앙시장 골목에 서울 상집이란 작은 공간을 말녀하고 그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수놓기에 오늘도 여념이 없다. 산외면 이식리에서 밭 3천평을 두고 일구면서 상도 팔아가며 성실히 꾸려온 삶이 결실을 맺어 작년 겨울 보은읍 교사리에 소중한 작은 집도 갖게 되었다며 넉넉한 미소를 띄는 이만길씨 부부의 모습은 정겹기만 하다.

평소 남다른 부지런함으로 새벽 6시경이면 어김없이 집을 나서서 이 마을 저 마을을 찾아다니며 상을 권하다 마루에 턱 걸터앉아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도 들어가며 오손도손 얘기꽃을 피우다 보면 이내 시장끼 도는 때가 되어 풋풋한 시골 인심속에 따뜻한 밥 한 그릇 신세라도 질라치면 그는 시골인심을 만찬삼아 왕후장상의 정찬인 듯 고맙게 먹는다. 이따금씩 쏟아붓는 따스한 햇살을 뒤로한 채 등에 진상을 벗삼아 흥얼흥얼 하며 걷는 발길따라 지나간 옛 정취가 짙게만 느껴진다고…….

아침일찍 나가 고생고생해도 많이 팔면 좋고, 하나도 못팔아도 그리 불쾌하게 생각지 않는 그의 모나지 않은 심성 위로 흐르는 옅은 웃음에는 소박한 진실성이 배어 있는 듯 하다. 예전에는 나무 송판으로 된 부드러움과 곡선미가 강조된 상이 유행했으나, 지금은 싱크대 문화에 밀려 특수 방수 합판으로 만든 상이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평일에는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며 상을 파는 이름없는 방랑자가 되고, 장날이면 서울 상집의 문을 열고 활기차게 하루를 설계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공자님의 인(仁)도, 부처님의 자비도, 예수님의 사랑도 초월한 그 무엇이 엿보인다.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자기일에 최선을 다하고 부지런히 엮어가는 그의 생활철학은 이 시대의 나태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본 받아야 할 점이라고 주위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어느날 한 젊은 새댁이 상을 사러와서 "제가 어렸을 때 엄마가 아저씨한테 상을 사는 것을 보고 이렇게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의 긴 상 장수로서의 삶을 확인할 수 있다. 밥상, 차상, 다과상, 원상, 교자상, 사인상, 자개상 등 이름도 가지가지인 상의 박물관 속에서 오늘도 넉넉한 웃음으로 미소짓는 이만길씨는 부인 박옥순(44)씨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다복하고 건강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금주에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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