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는 인도네시아 죡쟈카르타 주(州)의 응랑그란(Nglanggeran) 마을을 제1회 최우수관광마을로 선정했다. 전 세계 75개국 174개 마을이 참여해 32개국 44개 마을이 처음으로 누린 영예다. 최우수관광마을은 UNWTO가 농어촌 지역의 불균형 발전과 인구 감소 문제를 관광으로 해소하고자 전 세계에서 인구가 15,000명 미만의 마을을 평가해서 유엔 인증서를 부여하는 사업이다. 국가당 최대 3개 마을만 추천할 수 있었는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응랑그란 이외에 세계인이 찾는 관광지 발리(Bali)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베스트 3'의 하나인 롬복(Lombok)이 도전장을 냈다. 문화, 자연자원, 지속 가능성, 환경 보존 의지, 관광 잠재력, 안전 등 9가지 분야의 평가에서 쟁쟁한 자국의 경쟁 마을도 물리친 셈이다. 이곳을 서울에서 파견한 기자 한 분이 다녀왔다.
500여 가구가 5개 촌락으로 나뉘어 심사 여건에 맞추어 잘 정돈돼 있었다고 했다. 농사짓기, 염소 키우기, 초콜릿 만들기, 전통 악기와 무용 배우기 등 다양한 생태 관광 체험시설이 깔끔했다. 구름 위로 사화산 정상이 보이고, 푸른 논밭과 어우러진 아담한 다단계 폭포 등 마을을 둘러싼 자연 풍경이 아름다웠다고 했다. 응랑그란이 위치한 죡쟈 특별자치주는 세계적인 문화관광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보로부두르 불교사원과 쁘람바난 힌두사원, 그리고 이슬람 마따람 왕국의 술탄궁전이 중앙부에 자리 잡고 있고, 남으로는 광활한 인도양이 펼쳐지며 북쪽에는 므라삐(Merapi) 활화산이 웅자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응랑그란은 죡쟈 주도(州都)에서 멀리 떨어진 두메산골이다. 대부분 마을 주민은 그저 농사로 연명하거나 일부 청년은 해외로 돈벌이를 떠났다. 가난에 짓눌려 처음에 관광은 딴 세상의 얘기였다고 쓰고 있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세계 으뜸의 관광 마을을 만들었다. 그 이면에는 한국과의 인연이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한국 정부나 기업이 지원한 것은 아니다. 전적으로 마을 주민들 스스로가 해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한국을 은인의 나라로 여긴다. 한국을 모범으로 삼은 덕에 이룬 결실이라는 것이다. 이 사연의 중심에는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온 마을 청년들이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 신세였던 이들은 고향 마을에서 관광 전도사로 거듭났다. 귀국 시점이 각기 다른 25명의 청년은 이때부터 ‘한국에서의 경험’을 심기 시작했다. "땅을 갈지 않고 어떻게 식구를 먹여 살리냐"고 항변하던 주민들은 청년들이 이루어낸 변화에 점차 호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꿈 같던 이 사업의 중심에는 트리야나(Triyana)씨가 있다. 2000년부터 5년간 한국에서 일했다. 처음 3년은 경남에 있는 공장에서 자동차 스피커 만드는 일을 했고, 서울에서도 일했다. 그가 일하는 공장이 성장하여 직원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서 뿌듯했다고 했다. 월급에서 100만 원을 떼인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 떼인 돈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베풀어주었다. 엄마처럼 생각하라며 여러가지 식재료를 가져다주고 한국어를 가르쳐 준 아줌마들, 부지런한 게 마음에 든다며 자주 치킨을 주문해 준 아저씨들. 특히 질서와 시간 약속을 잘 지키고 환경 보호에 힘쓰는 한국인들의 장점을 몸에 익힌 게 관광마을 사업에 큰 자산이 되었다고 했다. 트리야나 씨가 떼인 돈은 얼마 후 우리 교민 한 분이 대신 갚아주었다.
관광 마을 사업은 2006년부터 시작되었다. 2006년 마을이 속한 구눙끼둘 군(郡)지역에 강진이 발생해서 많은 사람이 죽고 생활 터전을 잃었다. 마침 한국에서 돌아온 동료들과 의기투합해서 재건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듬해부터는 전주한옥마을처럼 근사한 관광 마을을 만들고자 관광 사업을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관광지 단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민들에게서 쓴소리를 듣기도 하였지만 2011년 이후 관광객들이 찾아오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 사태 이전에 이미 연간 1만 명 이상이 응랑그란을 방문하였다. 죡쟈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필자는 유엔의 최우수관광마을 선정 사업을 보고 우리 보은군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4계절이 뚜렷하고, 역사문화 유적지가 산재되어 있으며, 대청호가 상시 청정하고, 대추 농장과 많은 다문화 가정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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