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땀한땀 바느질로 인생고 극복 한복만들기 22년
명칠동안 밤잠을 설치며 만져보고 입어보던 추석밤 20여년간 그 고운 한복은 지으며 세상사를 헤쳐온 한복 아주머니 윤성례씨(49. 서울한복). 선 고운 한복을 마름질 하며 깊은 밤 자정무렵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는 윤성례씨는 오늘도 팔, 다리, 허리를 두드리며 제때 한복을 만들어 주기 위해 피곤함을 잊는다. "부업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고 애초부터 아이들에게 한 끼의 밥을 먹이고 남편 약값이라도 벌어보기 위해 시작한 것이 벌써 20년이 넘었네요."라며 윤성례씨는 지나온 날의 실타래를 푼다. 윤성례씨가 바느질을 시작한 것은 27세 때인 지난 69년. 산외면 장갑리에서 대원리로 출가하여, 시부모, 시동생, 시누이 등 12명과 함께 오손도손 살다가 남편이 병을 얻어 도저히 일할 수 없게 되자 읍내로 이사, 재봉틀 앞에 앉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한복감 파는 집에서 삯을 얻어 했기 때문에 일감 하나라도 더 얻으려면 한복도 잘지어야 했지만 약속한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했다.
그런 속에서 그의 손재주와 신용을 믿는 손님이 점차 많아지고 단골이 늘기 시작해 윤씨는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에 많이 해봐야 2벌 정도로 5백원 벌이가 고작이었지만, 이 5백원은 반찬과 남편의 약, 자식들 학용품도 사줘야했던 황금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잘했던 맏이가 청주로 진학하고 연년생인 딸은 중학교밖에 못가르쳤지만, 그 딸이 스스로 벌어 통신고등학교까지 졸업한 것은 생각할수록 대견하다고.
삯바느질로 쓰러져가는 것이라도 자기소유의 가게를 내기위해 몇푼 안되지만 조금씩 조금씩 돈을 모아, 바느질을 시작한 지 9년만인 78년 군에서 불하한 중앙시장 터를 사서 자신의 가게를 마련, 서울 한복이라는 간판을 내걸 수 있었다. 이제는 남의 집 눈치안보며 재봉틀소리를 낼 수 있었고 전기세 많이 나올까봐 일찍 불을 꺼야했던 불편한 생활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병든 남편을 편안하게 해주고 아이들 공부방이라도 마련해줄 수 있어 참으로 기뻤다고 회고한다.
"집을 사면서부터 무척 힘들었어요,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기라 집 융자금 갚으랴, 학자금 대랴, 남편 약 사대랴 너무 고통스러웠다."는 윤씨는 "스래도 돌이켜보면 그런 때가 행복했지 싶어요, 지금은 아이들도 모두 커서나가고 큰집에서 혼자 있노라면 아이들과 함께 살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고 말한다. 또한 좋다는 약 다먹어지도 낫지 않고 병석에만 누워살다 86년 끝내 세상을 훌쩍 떠난 남편이 야속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는 윤성례씨는 4년동안 거동못하느 남편의 병수발로 85년 효부상(孝婦償)을 받기도 했다.
이제는 아이들도 일좀 그만하고 쉬라고 성화지만 눈이 밝아 바늘 담이 보일때까지는 바느질을 계속하고 싶다는 윤성례씨 한복과 함께 한 삶, 비록 대학까지 가르치지는 못했지만 병치레 않고 건강하게, 밝게 자란 1남 3녀의 자식들과 함께 하는 행복, 그의 이같은 삶이야말로 한 땀 한 땀으로 만들어지는 선 고운한복과 같이 마음쓰임해 깊고 포근한 한국 여인네의 표상이 아닐는지.
(금주에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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