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나 가장 어렸을 때의 기억을 누구나 갖고 있다. 나 역시 내 삶 속에 가장 어렸을 때의 기억은, 서너 살 무렵, 우물이 있는 집에 불이 나, 연기가 뿌연 모습을 뒷마루에 서서 구경했던 것이 어렴풋하다.
또렷이 떠오르는 것은 일곱 살 때.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처음 맞이한 여름방학인데 하늘은 검은 구름이 가득하고 아주 무덥던 날이었다. 숙이라는 친구와 여럿이 둑길에서 놀았다. 오이풀을 뽑아 손바닥으로 비비며 “오이냄새 날래! 참외냄새 날래!” 하면서 때로는 우산처럼 쓰기도 하고 마냥 재미있게 뛰어다녔다.
그때,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커다란 소리가 들려 더 놀고 싶은 마음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소나기가 곧 내릴 텐데, 비를 맞으면 어쩌려고 그러니?” 하며 꾸중을 하셨고, 난 땀이 범벅이 된 얼굴과 몸을 씻고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니 숙이가 둠벙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빠졌다고 했다. 바로 우리 가족은 둠벙 쪽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가보니, 동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둠벙 주변 풀밭에 엎드려 있는 작은 숙이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은 안된 표정으로, 숙이는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난 벌거벗은 숙이를 보며 그의 죽음에 대한 상황보다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알몸이야? 창피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 뒤, 둠벙은 숙이 어머니의 원성으로 메워졌고, 어머니는 “숙이가 죽던 날 내가 널 부르지 않았다면 너도 어떻게 되었을지도 몰라.” 하며 물놀이에 대해 부쩍 주의를 주셨다. 그날, 둑길에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함께 놀던 친구들은 둠벙으로 가서 물놀이를 했고,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난 뒤, 어른들 사이에서 몇 가지 이야기가 돌았다. 둠벙은 아랫마을과 윗마을 사이에 있었다. 윗마을 어른들이, 아랫마을에 마실을 왔다가 이슥한 밤에 집으로 돌아가던 날이면, 아랫마을 끝 집 돌담에서 단발머리 어린 여자아이가 툭 튀어나와 “아직 마실꾼이 있는 걸 보니 밤이 늦은 건 아닌가 봐.” 하며 메워진 둠벙 쪽으로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단발머리 아이가 숙이라고 수군댔다. 숙이 엄마는 그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늦은 밤에 둠벙 주변을 서성이며 숙이를 만나려고 했다. 또 겨울날, 하얀 눈이 내리는 날에는 빗자루를 들고 숙이 춥다며 숙이의 묘지를 쓸었다고 했다. 어른들은 혀를 차며, 숙이 엄마의 애달픈 모성을 공감하고 동정했다.
나도 여름이 오고 봉숭아 꽃이 필 때면, 언니와 숙이 언니, 숙이 넷이서 손톱에 예쁘게 봉숭아 물을 들이던 때를 그리게 되었다. 봉숭아 꽃과 잎, 백반을 넣고 빻은 다음, 그것을 손톱에 얹고, 아주까리 잎으로 감싸 실로 묶어, 빨간 물을 들이던 때가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실감하였다. 그리고 숙이의 부재를 느끼며 조금씩 죽음의 두려움이 생겼고, 성인이 될 때까지 메워진 둠벙 옆을 지날 때면 무서워서 빠르게 그 길을 피하곤 했다.
그해 겨울, 할아버지 제삿날이었다, 난 갑자기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가 궁금해지고 무섭게 다가와, “엄마! 할아버지는 왜 돌아가셨어? 나도 죽으면 어떡해. 땅속에 묻히면 숨도 쉴 수 없고 답답하잖아. 정말 싫어.”하며 울고 또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겪은 숙이의 사건은 아마 내 안에서 최초로 느낀 죽음의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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