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월, 어느 도시에서 노인네 셋이 어느 젊은이를 죽여서 교도소에 들어왔다. 그런데 어찌 이상하다. 아무리 셋이라고 해도 노인인데, 어떻게 젊은 사람을 죽였을까? 그리고 그들 사이엔 어떤 사정이 있는 걸까? 독자들도 궁금해할 것이다. 그들의 죄목은 과실치사.
전시에 사용하는 영주의 안정비행장, 즉 8㎞ 정도의 국도 옆에 있는 간이비행장이 있다. 이곳은 영주 시내에서 풍기 쪽으로 향하는 5차로의 교차선인데, 도로가 끝나고 또 아래로 내려가는 곳에 위치하여 평상시에도 교통사고가 빈발한 교차로였다.
이유인즉 어느 젊은이가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커브 길에서 넘어져 오토바이와 몸이 따로 날아가 기절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곳을 지나던 어른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우선 사람 목이 반대로 돌아가 있기에 숨을 못 쉬고 죽을 것 같아 살리기 위해 얼른 숨을 쉴 수 있게 목을 원 위치에 돌려놓는다고 한 것이 사망 원인이었다. 사실은 겨울날 찬바람 때문에 젊은이가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옷(파카)을 거꾸로 입고 있었던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사고라고 쫓아가 보았는데 옷을 거꾸로 입었으니 목이 돌아간 걸로 보였을 것이며, 노인들이 당황하고 조금이라도 환자를 살려 보려고 애쓴 것이 결국 이 지경이 되었다.
나도 고등학교 졸업 후 오토바이 타는 걸 몹시 좋아했다. 오토바이의 굉음소리와 속도감을 느끼는 도중에 마주쳐 불어오는 찬바람을 막기 위해 파카를 거꾸로 입고 달려 보곤 했다.
전국의 오토바이 운전자들이여, 단언컨대 옷을 거꾸로 입고 오토바이 운전하지 맙시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안녕하세요?” 말 한마디
재소자들이 천차만별의 죄를 짓고 수용생활을 하지만, 외정문에서 근무하다 보면 다양한 민원인을 보게 된다. 자식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있어 어두운 표정과 무거운 발걸음으로 면회 오는 사람 혹은 가족의 갖가지 사연을 가지고 걱정과 우려를 하면서 면회를 오는 사람 등 다양하다.
특히 민원부서에 근무하는 교도관들은 가족들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이 면회를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갈 때 안심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모두들 면회 오시는 분들한테 공손하고 예의 바른 모습과 태도로 근무를 한다.
면회 오는 사람 가운데 가끔은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신분증 없이 면회 와서 면회시켜 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 “안녕하십니까?”하고 교도관이나 경비교도대가 인사를 하는데도 본체만체하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교도관이 재소자나 민원인에게도 친절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나, 친절을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덩달아 친절했으면 한다.
경험상 인사를 하고 상대방에서 대꾸를 안 하는 바람에 무안했을 때가 많았다. 더러는 괜히 트집을 잡는 사람도 있었고, 만기출소자의 가족이나 지인이 12시에 시간이 되어야 출소를 하는데 저녁 9시쯤 와서 왜 빨리 안 내보내느냐고 외정문에서 땡깡을 피우는 경우도 있었다. 얼마나 난감한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또 자기 아들이 영어의 몸이 되어 오늘 출소하는데, 뙤약볕에서 기다리며 한 여름 차 안에서 교도소 외정문 주변을 왔다 갔다 할 때는 얼마나 신경이 쓰이는지 모른다. 그럴 때면 근무수칙 상 “여기 들어오세요.”라는 소리는 못하고, 물이라도 한 잔 드리고 위로의 말을 전하곤 한다. 인정상 안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시청이나 동사무소, 세무서 등 국가의 어느 관공서를 갈 때 조금은 실례되지 않는 모습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사는 사회에 기본 예의는 아닌가 싶다. 내가 하는 만큼, 또 받으면 받은 만큼 친절하게 응대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친절과 도덕은 조금만 노력하면 된다. 게다가 돈도 안 든다. “안녕하세요?” 하고 건넨 친절한 인사말 한마디에 모두가 유쾌하고 기분이 좋아져서, 서로가 만족을 느끼는 삶이 될 것이다. 오늘도 마주치는 사람에게 따뜻한 미소와 친절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