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아우토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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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아우토반
  • 양승윤(회남면 산수리)  
  • 승인 2024.05.3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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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라인(Rhein)강의 기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라인강의 기적은 2차대전 이후 1950년대 서독의 경제부흥을 이르는 말로 ‘한강의 기적’의 형님뻘 된다. 정작 독일에서는 라인강의 기적 대신 단순하게 ‘경제기적’이라는 용어를 쓴다. 라인강은 스위스 중부 알프스에서 발원하여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과 프랑스 국경을 따라 160km를 흘러 네덜란드를 적시고 북해로 빠지는 총연장 1230km로 서유럽에서 제일 긴 강이다. 한강의 기적은 60년대 말부터 70년대를 거쳐 온 국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창출해 냈다. 그 중심에 우뚝 섰던 이가 박정희 대통령이었는데, 그분의 가장 큰 공은 20세기로 들어선 이래 패배주의의 늪에 빠져 있던 국민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찾아준 것이다. 
   박정희는 1964년 12월 7일 한국 대통령으로 첫 유럽국가 방문에 나서 서독을 찾았다. 에르하르트(Erhard) 총리가 박 대통령을 안내하였다. 그는 한국에는 산이 많더라며 그런 지형에서는 산업발전이 어렵다고 단언했다. 고속도로 건설이 절실함을 강조했다. 에르하르트가 말했다. 나는 히틀러를 혐오한다. 그러나 히틀러가 만든 고속도로 아우토반(autobahn)을 달릴 때나 그가 만든 국민차 폭스바겐(volkswagen)을 탈 때는 항상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고속도로에 자동차를 달리게 해야 경제가 산다. 그러려면 제철소가 필요하다. 연료를 얻자면, 석유화학공업을 육성해야 한다. 일본과 손잡아라. 독일과 프랑스는 16차례나 전쟁을 했다. 2차대전 패전 후 초대 총리 아데나워는 기꺼이 프랑스로 드골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한국도 그렇게 했으면 한다. 에르하르트는 박정희에게 독일 경제기적의 배경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미화 4천만 달러에 해당하는 1억 5900만 마르크의 차관을 얻어 귀국한 직후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의 초기계획에 착수하였다. 대통령은 일찍이 고속도로에 대한 구상을 가지고 있었고, 아우토반 방문으로 이를 확신하게 되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1968년 2월 1일에 시공하여 1970년 7월 7일 전장 428km의 구간을 429억 원의 예산으로 완공하였다. 당시 우리 국민소득은 고작 169달러였다. 16개 건설업체와 3개 건설공병단이 참여하였다. 한국 역사상 가장 큰 토목공사였다. 2년 5개월 공기 동안 연인원 900만 명이 동원되었고 그중 77명이 순직하였다. 대통령은 틈만 나면 헬기를 타고 건설현장을 찾았다. 때때로 헬기를 건설현장에 착륙시켜 인부들을 격려했고, 완공된 고속도로 아스팔트 위에도 막걸리를 뿌렸다. 한국의 해외 도로건설 수주 2023년 말 누계 333억 1000만 달러의 시발점이었다.  
   경부고속도로는 포항제철(포철) 건설로 이어졌다. 1970년 4월에 시작되어 1973년 6월에 포철 제1고로(高爐)에서 쇳물이 쏟아져 나왔다. ‘산업의 쌀’로 통하는 원료철강의 첫 수확이었다. 대일 청구권 자금 5억 달러 중 1억 2000만 달러가 투입되었다. 대통령은 박태준에게 명했다. 경부고속도로는 내가 맡을 테니 포철은 임자가 맡아. 박태준은 모든 임직원에게 ‘우향우 정신’을 강조하였다. 포철 건설현장의 오른쪽에 영일만이 있다. 조상의 피와 땀의 대가로 짓는 제철소 건설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국가와 국민에게 대역죄(大逆罪)를 짓는 것이므로 우향우해서 영일만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2021년 7140만 톤의 원료철강을 생산하여 중국, 인도, 일본,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6위의 철강 대국이 되었다. 
   1975년 한국산 포니(pony)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울산에 석유화학단지가 조성되고(1968년), 1970년에는 석유공사가 설립되어 자동차산업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하면서 두 차례 석유 위기도 간신히 모면했다. 70년대 초까지 드럼통을 망치로 두들겨서 차체를 만들던 우리가 불과 40년 만인 2013년 국내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 2000만 대를 보유하게 되었고, 2022년 4월에는 전국 자동차 등록 대수 2500만 대를 기록하였다. 국민 두 사람당 한 대의 차량을 가지게 된 것이다. 2023년 한 해 동안 424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한 한국은 2020년 이후 계속해서 세계 5위의 자동차 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홍천 사는 아우네를 다녀왔다. 회남면 산수리에서 홍천 시내까지 왕복 다섯 시간이 걸렸다. 오가면서 문막 휴게소에도 들렸다. 고속도로 사용료는 편도 9200원. 고속도로가 없었다면 어디서 하룻밤 묵어가야 하는 먼 거리였다며 아내와 박 대통령의 고마움을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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