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원망하고 평생을 남을 원망하고 살아왔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만난 것은 43년 전 제 나이 열여섯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저희반 담임이셨지요. 고입시험을 앞둔 어느 날 체육시간 학급반장인 저와 주번 두 명이 교실문을 잠그고 체육시간을 다녀온 후 제 옆의 짝궁인 00가 돈을 2000원을 잃어버렸다고 신고해 선생님은 도둑을 잡겠다며 우리반 전체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손들게 시키고는 도둑을 적어내라고 종이쪽지를 나눠주었습니다.
무려 열 명이 도둑이라고 불려나와 몽둥이로 매를 맞아야 했지요. 돈을 잃어버린 친구는 나이 많은 우리학교 수학선생님의 조카였지요. 범인을 잡겠다는 선생님의 과도한 집착은 5명으로 압축되고 화살은 하숙이나 자취하는 학생으로 압축되었습니다. 저도 그중의 한 학생이었습니다. 교무실에 불려가니 시계를 푸르고 주먹으로 난타를 하고 두꺼운 몽둥이로 마구 머리를 때렸습니다. 자수하라 용서를 해준다. 정말이지 무지막지한 폭력은 너무도 무서웠습니다. 학급 친구들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고 교무실에 오라는 통보는 나를 도둑으로 낙인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교무실에서의 무차별 구타, 몽둥이로 머리를 때릴 때는 눈에 불이 번쩍거리고 주먹으로 어린 저의 얼굴을 가격하고 자백하라는 강요는 정말이지 악마 같았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저는 60이 된 지금도 악몽입니다.
고입 입학시험을 앞두고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숙집을 방문해 공부하는 책이며 책갈피며 매일 쓰는 일기장까지 수사하고 체력장 시험 때 운동화를 사서 신으라고 책갈피에 둔 아버지가 주신 2000원을 발견하고 무슨 큰 도둑이라도 발견한양 저를 도둑으로 간주 해버린 선생님! 하숙집 주인부부의 비웃음 그리고 학급 친구들의 도둑놈을 대하듯 바라보는 눈초리,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선생님한테 똥이라도 퍼와 뿌리고 싶었습니다.
전에 1번도 결석을 한 적이 없는 저는 선생님이 무서워 학교를 3일 결석했습니다. 밀려오는 선생님에 대한 두려움은 유서와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평리 하숙집에서 나와 학교가 아닌 공동묘지가 있던 뒷산으로가 밤나무에 올라가 가죽 혁대에 목을 매달고 나무 밑으로 몸을 날렸습니다. 결과는 혁대가 파손되어 제 몸은 밤나무 밑으로 곤두박질하였습니다.
삼일 후 등교한 학교에서 지금까지 살면서 잘못 살아온 것이 있으면 반성하라는 반성문 강요, 저는 그것이 덫인지도 몰랐습니다. 수해로 밥을 간장에 찍어먹는 하숙집의 밥은 정말 배가 고팠었습니다. 저는 순진하게도 전에 후평리 사는 친구가 우리 고모부 사과밭에 가 고모허락 맡았으니 사과 따먹자는 말에 사과 따먹은 이야기를 반성하고 실토하니 그걸 미끼로 근신2주 처벌과 함께 아버지 호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해 고등학교 입시도 제 실력이면 충분히 갈수 있는 청주시 인문계에 원서를 써달라고 해도 선생님은 너 같은 놈이 어디가 너는 00고등학교나 가라 했지요. 그 말 한마디 제게는 원한이 되었습니다. 원하지 않는 고등학교 생활은 중3 선생님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전 고교시절 내내 문제 학생이었습니다. 항상 분노를 절제하기 힘들었습니다. 공부보다는 태권도를 십팔기를 유도를 좋아했고 언젠가 선생님을 00기 위해 발차기며 샌드백을 수도 없이 두들겼습니다. 주먹이 벗겨지고 피가 흐르는데도 멈추질 않았습니다. 선생님을 향한 분노는 다른 선생님들에게 향했습니다.
증오심으로 운동을 했습니다. 선생님을 향한 증오심은 도를 넘었고 형편없는 학업실력과 내신은 전문대학을 보결로 밖에 갈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원망은 대전의 유흥가나이트클럽에서 기웃거리고 결국 대전의 어느 유흥가 골목에서 싸움이 붙어 대전교도소에 소년수로 수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도둑놈이라는 누명과 매를 든 선생님을 원망하고 원망했습니다. 그 시절 왜 저를 심하게 때렸는지요. 저는 검사 기소유예로 출소 후 군대를 다녀온 후 전문대학을 복학하고 전문대 졸업하는 해에 교도관 시험에 응시 합격하고 교도관으로 32년을 근무했습니다. 저보다 더 많은 사연으로 범죄자가 되고 마치 엄한 시어머니 아래에서 배운 며느리가 나중에는 더 혹독한 시어머니가 되듯이 폭력을 받은 사람은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더 큰 폭력을 행사합니다.
저의 어린시절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는 참으로 괴로웠습니다. 교도관 퇴직 후 찾아온 뇌경색은 어린 시절 머리를 맞아서인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제 나이도 60입니다. 옛날 같으면 노인으로 들어가는 나이입니다.
선생님! 이제 당신을 용서하고 싶습니다. 내가 살기위해 내 기억에서 잊어버리고 싶습니다. 저는 방송대 편입 후 졸업 고려대에서 석사 동국대에서 사회복지학박사를 올해에는 북한학 박사를 둘이나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얼마까지 살지는 모르지만 나를 위해 내 자신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 아픈 기억은 잊어버리고 건강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세상의 모든 이들을 용서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세상에 대한 선생님에 대한 원망과 원한을 훌훌 털어버리고 살고 싶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 재소자를 못살게 하는 교도관 보다는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아름답고 따듯한 세상을 기대해봅니다. 선생님도 편안한 노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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