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이다. 5월은 가정의 달, 청소년의 달이라고 불릴 만큼 가히 눈부시게 푸르르다. 어제 다녀온 요양원 앞뜰에 핀 영산홍의 붉게 토해내던 꽃빛이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요양원 안으로 들어가니 예상했던 대로 적막함이 발자국 소리를 짓누르고, 휠체어로 오가는 노인들의 무표정한 시선이 가슴까지 짓누른다. 할 말이 많을듯 한데도 침묵만이 권리인 양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 분들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와, 세간에 떠다니는 노년의 푸념 몇 가지를 젊은이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2017년에 발표된‘부모부양 의무자 기준완화 폐지’조항은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노년에게는 정신적 고립을 심화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점점 가족규모가 단촐하거나 왕래가 뜸하면서 가족관계 결핍을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보이스피싱, 폭력, 판매사기, 절도 등, 노인대상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살벌한 세상이 아닌가. 노인 1명을 도서관 1채에 비유하는 말도 있지만, 글을 쓰지 않고 말을 하지 않으면 바보 도서관으로 전락하기 쉬운 안타까운 시대이다. 힘겹게 살아낸 인생역습을 자식에게 무조건 주고자하나, 젊은이는 구태의연이라는 빌미를 앞세워 받아먹지 않는 시대이다. 누구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줄도 모르고 철없는 자식들은 쿨쿨 잘도 자겠지만, 일찍이 철이 든 어느 시인은 <엄마의 자장가>를 불렀다지.‘잘자라, 우리 엄마. 장독위에 내리는 함박눈처럼 ~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서 ~ 그 아가의 저절로 벗겨진 꽃 신발처럼 ~ 잘자라, 우리 엄마.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 갈 때까지 ~’읽고 또 읽어도 눈물만 흐르며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간에 흘러 다니는 노인삼반(老人三反)이야기는 참 아이러니컬하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변화하는 세 가지 증상인데,‘가까운 것은 잘 안 보이는데 먼데 있는 것은 잘 보이는 원시증상, 밤에는 잘 안자고 뒤척거리면서 낮잠을 자버리는 변형된 수면습관, 그리고 기대감이 컸지만 엉뚱한 길로 치닫는 자식은 보기 싫건만, 그 속에서 나온 손주는 예쁘기만 한 엉뚱한 증세’라고 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나도 어제일은 깜빡깜빡 하면서 어릴 적 유년기의 추억은 아직도 별빛처럼 초롱초롱 하니 말이다. 멀리 내다보는 노년기의 안목을 그때 청년시절에 지녔더라면 오죽 좋았으랴만 ~ 늙은이 입장에서 젊은이를 보고, 실패를 바탕으로 성공을 내다보며, 지인들의 죽음을 통해서 삶을 생각하고, 시들어 초췌함으로 영화로움을 알게 되는 건, 모두 연륜의 탓이란다. 무심코 살다보니 인생의 황혼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는 여한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알겠는가.‘겨울을 느낄 때쯤이면 새봄이 다시 찾아오고, 사랑을 시작할 때쯤 식어버리는 사랑을. 건강이 보배임을 알 때쯤에 몸은 무너지기 시작하고, 부모를 알 때쯤이면 이미 내 곁을 떠나신다는 걸, 나도 자신을 알 때쯤에 많은 것을 잃어가며 떠날 준비를 해야 된다는 걸’~ 왜 진작 몰랐을까 싶다. 그리고 이건 가장 무서운 얘기인데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는 째깍거리는 초침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소년이여, 청년이여~ 떠오르는 해와 지는 석양은 같은 맥락의 태양이란다. 중천에 떠있는 그대들의 인생에도 머지않아 노을이 출렁거리고, 윤기 흐르던 검은 머리에 백발의 화관이 얹힌다는 것을 어찌 쉽게 예견하랴 ~. 노인 3반 증세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하는 핵가족 시대이니, 허당한 부모 앞에서 용감하고 당당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없고 바빠도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 말을 좀 들어보소.‘굶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게 뭔지 아슈? 외로움이지. 외로워 보지 않은 소년이 어찌 노년의 외로움을 짐작할까만,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살 수밖에 없는 우리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단다.’이 말을 귀담아 듣는 5월이라면 참 좋을 것이오. 가진 게 있어도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나이, 살아온 많은 경험과 이력 때문에 바보가 되어야 편한 나이, 젊은이들이 한단의 뜀틀을 받쳐주어야 비로소 설 수 있는 노년임을 알아차리면 참 좋을 것이다. 자식에게만은 安分(안분)과 自足(자족)의 그늘막으로 남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5월 말이오.
유상 속에 걸어온 길 되돌아보며 무상 속으로 빠져보는 노년의 푸념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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