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나무에 얽힌 좋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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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에 얽힌 좋은 인연
  • 오계자(보은예총 회장)
  • 승인 2024.03.2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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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몸을 담고 있는 보금자리가 있다. 식물이 뿌리내리는 땅이 얼마나 넓은가라는 조건보다 얼마나 옥토인가가 더 중요 하듯, 내 보금자리도 웅장함보다는 진정 내가 안온하게 쉴 수 있는가에 따라 행복이 달라진다.   
45년 전, 새집을 짓고 부터 아버님은 제일 먼저 백목련을 심으시고 거실 앞에는 라일락 등 넓은 마당 가꾸시느라 신명이 나셨다. 시골이라 환경이나 청정한 대기는 걱정이 없지만 삶이 가파른 가족에게 자연의 정서가 스미기를 나는 빌었다.  
긴 세월이 흐르고 보니 예부터 있던 은행나무와 감나무는 물론 백목련과 향나무까지 모두가 슬래브 지붕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위세를 부린다. “마당에 나무들이 지붕보다 높으면 안 좋아.”지인들이 말하지만 어른이 심은 나무를 어찌 할 수가 없어서 뭉그적이고 있었다. 
어느 날 할아버님께서 “은행나무가 울더라.” 간밤에 은행나무의 울림소리를 들었다고 하시며 편치 않으신 마음을 나에게만 표현하셨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아버님도 어머님도 계시는데 손부인 나와 상의 하시더니 고인이 되신 지금도 집안의 재난을 방비해야 할 때는 꿈에 나를 찾아오신다. 
할아버님 말씀에 당장 중장비를 불러 적잖은 경비를 들여 앞마당에 있던 은행나무를 담 밖으로 옮겼다. 그리고 목련나무는 군 입대하는 장병들처럼 해마다 깡총하게 이발을 시키고 있다. 
그런 중에 집 앞 밭에 배나무를 심더니 그분은 우리 집 마당의 향나무 때문에 배가 영글지 못하고 다 떨어진다는 이유로 우리 집을 향한 눈씨가 점점 노골적이다. 물론 주변의 귀띔이 있기에 그 따가운 눈씨의 속내를 알 수 있었다. 이미 오래된 향나무가 있는 줄 알면서 배나무를 심었으니 우리 탓은 아니지만 내가 맘이 편치 않아 한동네 사시는 당숙의 도움으로 향나무를 베어내기로 했다. 옆집 앞집 피해 없게 하려고 내 집 마당으로 넘어지도록 묶은 밧줄을 내가 당기고 당숙은 톱질을 했다.   
아뿔싸, 향나무의 가지가 하도 무성해서 내가 제대로 피하질 못해 그만 119구급차가 동원되어 실려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4번 척추가 완전히 똑 부러졌단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시인 오라버님께서 문병 오시더니 “집안에서 수십 년 동고동락한 나무를 왜 잘라 자르길!” 하시며 화를 내셨다. 집의 대지가 넓어서 내가 감당 못하는 걸 늘 걱정하시던 분이시다. 화난 얼굴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정을 느꼈다. 지금도 어디서든 향나무를 보면 나는 그때 성난 시인 오라버님 생각이 난다.
연전에 융릉과 건릉을 지키고 있는 늙은 능참봉 향나무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사도세자로 더 알려진 추존 장조와 현경왕후(혜경궁 홍씨)를 안장한 융릉과 정조와 왕비 효의왕후가 안장된 건릉을 답사했을 때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왕릉이 아니라 능참봉이라는 호칭을 얻은 향나무였다. 도착하자마자 매표소 오른 쪽에 천년의 세월이 능참봉을 품은 듯도 하고 능참봉이 천년의 세월을 품은 듯도 한 구부정한 향나무가 조선의 할아버지들을 연상하게 했다. 두 팔을 한껏 벌려서 온 우주를 다 안으신 모습이시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는 어쩔 수 없이 버팀목으로 받쳐 모시고 있다. 지팡이에 몸무게를 나누며 소임을 다하는 능참봉 향나무를 안내하는 해설문이 있다.
「~중략  향을 피우는 것은 부정을 없애고 정신을 맑게 하여 천지신명과 연결하는 통로라 생각하여 제사를 모실 때 반드시 혼을 부르는 향을 피웠다. ~중략」
해설자의 말은 예부터 향나무 뿌리가 물을 정화시킨다고 여겼기 때문에 조선시대도 우물가에 주로 심었다고 하셨다. 역시 우리 조상은 선견지명이 뛰어났다.
본래 향나무의 잎은 짧고 가시처럼 날카로워 찌르기도 하지만 칠팔년 자라면 편백나무 잎처럼 부드럽고 무던한 잎이 생성되어 한 나무에 두 가지 잎이 존재 한단다. 
답사를 잘 마치고 온 날, 턱을 고이고 책상에 앉아 밤이 이슥하도록 생각에 잠겼다. 향나무를 심으신 아버님 생각, 내가 다치는 바람에 당황하시던 당숙님 생각, 문병 오셔서 화를 내시던 시인 오라버님 생각에 젖어 혼자 울다가 웃다가 내가 인복은 타고 났구나 행복했다. 세상에는 나를 아껴주고 위해주시는 분이 많음을 알게 된 행복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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