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 김정선생, 이상정치를 키우다
“넓은 들판 바라보며 외로운 고봉정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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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 김정선생, 이상정치를 키우다
“넓은 들판 바라보며 외로운 고봉정에 머문다”
  • 박진수 기자
  • 승인 2024.02.01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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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속리산 천왕봉 금강을 만들다

글 싣는 순서
1. 하늘아래 첫동네 신선을 만들다. 
2. 물은 흘러 속리구곡이라 부른다.
3. 동학농민군의 처절한 외침을 듣다. 
4. 고봉 김정선생, 이상정치를 키우다
5. 깃대의 기상과 오천 군사 목을 축이다.
6. 절세의 기재 최수성의 마을 원정리.
7. 흘러간 물은 다시 청산에 잠기다.
8. 비단의 금강, 백제 문화를 만들다.

 작은 개울이든 큰 강줄기는 그 시작이 있으며 산을 넘지 못하고 아래로 흐른다. 속리산 천왕봉은 옛 고서 &#11810;신동국여지승람&#11813;에 따르면 ‘속리(俗離) 삼파수(三波水)라 불리고 있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은 아래로 흘러 한강, 낙동강, 그리고 금강으로 흘러 세갈래로 흐른다고 전하고 있다. 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작은 하천이 모여 우리의 삶의 터전을 만들고 다시 아래로 흐른다. 
보은은 지정학적으로 백두대간중 한남금북정맥을 배산을 형성하고 있어 비단처럼 펼쳐진 금강의 발원지 마을을 따라 삶의 터전속에 묻어 있는 문화와 역사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편집자주>

 

삼파월류봉에 위치한 고봉의 모습.
삼파월류봉에 위치한 고봉의 모습.

“천왕봉의 기운 가득한 삼파월류봉, 옛 선비의 풍취가 가득하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이제 넓은 들판을 만나 인간의 삶속에 깊숙이 파고든다. 인간의 삶속에 파고든 삼가천은 길을 만든다. 바로 삼냠의 중심,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가 만나는 지금의 25번 국도 연결된 임한리 들판을 가로 지른다.
보은에서 상주방면으로 향하다 속리산IC를 시작으로 넓은 들판을 지나다 보면 왼편으로 제법 큰 규모의 소나무 숲이 나온다. 임한리라는 이름에서도 말해주듯이 소나무 노송들이 이뤄진 숲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부터 100여년전만 해도 마을 서편의 솔숲 뿐만 아니라 사방에 노송들로 이뤄진 숲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마을 서편에만 일부 남아 과거 숲속에 둘러싸여 있던 임한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임한리 마을은 삼가천이 계곡을 빠져 나오면서 장안면 장안리를 지나 다다르는 곳에 위치한 마을로 산이 없다. 예전에는 마을 일대가 온통 자갈로 뒤덮여 있는 곳이었다. 민요인 ‘쾌지나 칭칭나네’의 가사에 ‘임한이 갱변에는 자갈도 많네’ 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임한리 옆을 흐르는 하천에는 자갈이 많다고 한다. 이처럼 평지이면서도 하천인근 자갈이 많은 토양 특성 때문에 얼마전까지만 해도 논농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담배, 조, 콩, 보리, 밀, 호밀 등 잡곡 위주로 재배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지정리가 되면서부터 지금은 대부분이 논농사를 위주로 농작을 하다가 최근들어 대추나무를 식재한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 
임한리에 소재한 솔밭공원은 한동안 보은대추축제장으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지금은 아침 안개와 어우러진 풍경을 찍기 위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모여 보은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임한리 마을을 거친 물줄기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화령고개를 넘지 못하고 보은방향으로 적암천과 합수되는 지점을 만난다. 넓은 들판을 지난 삼가천과 적암천이 합수되는 지점에 외로운 봉우리에 작은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고봉정이다. 이 고봉정 아래에는 춤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 있는데 조선 중종 때 최수성(崔壽&#23800;)·김정(金淨)·구수복(具壽福) 등이 함께 창건하고 강학(講學)을 행하였고 한다.
현재는 구씨종중(具氏宗中)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송시열(宋時烈)이 쓴 고봉정사의 현판이 있었으나, 현재 걸려 있는 현판은 최규하(崔圭夏)가 쓴 휘호가 남아 있다.
본래 고봉정사는 조선 전기 충암 김정선생이 보청천,적암천,삼가천이 합류되는 작은 동산인 삼파연류봉에 올라 학문을 연마하고 풍광을 즐기면서 고봉이라 칭하고 충암 김정선생이 자신을 고봉을 자신의 아호로 사용했을 정도로 아끼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삼파연류봉이라는 지명의 근거를 찾을 수 없지만 기묘사화 당시 원정 최수성 선생이 고봉정을 지어 은거하던 기록이 남아 있으며 충암 김정선생의 문집에 1506년 이전에 고봉정이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충암 김정 선생은 1507년 증광문과에 급제했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1514년 순창군수가 되었다. 조선 중중의 왕후인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보은에 유배된 이후 사예·부제학·동부승지·좌승지·이조참판·도승지·대사헌 등을 거쳐 형조판서를 지냈다. 조광조를 도와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미신타파와 향약의 실시하고 정국공신의 위훈삭제 등과 같은 개혁을 시도하다 기묘사화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사약을 받고 죽었다. 1545년에 복관되었고 1646년 영의정에 추증되었던 보은의 대표적인 역사적인 인물중 한분이다. 
충암 김정선생은 이 곳 고봉정에 올라 자신의 이상정치의 꿈을 키우며 지금의 보청천,적암천,삼가천의 합류되는 삼파연류봉의 기운을 고봉정과 함께 했을 것이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아래로 흘러 하천과 하천이 만나 천혜의 자연경관이 펼쳐졌던 삼파월류봉의 원형은 변했지만 왕도정치의 꿈을 꾸던 옛 선비의 모습이 선하다.

평지를 만나 흐르는 삼가천.
평지를 만나 흐르는 삼가천.
25번 직선국도와 연결되는 임한리 마을.
25번 직선국도와 연결되는 임한리 마을.
임한리 솔밭공원.
임한리 솔밭공원.
적암천과 삼가천이 만나는 합수지점.
적암천과 삼가천이 만나는 합수지점.
고봉정사.
고봉정사.
고봉정.
고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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