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답지 않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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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답지 않은 봄
  • 최동철
  • 승인 2024.02.0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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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

 낼모레 글피면 봄이 들어선다는 입춘이다. 한데 봄답지 않은 봄이다. 이상기온과 다가오는 총선 여파 탓인지 훈풍은 온데간데없고 냉랭한 분위기만 사회 전반을 감돈다. 물가는 천정부지요 서민들 삶은 팍팍한데 여야 정치인들은 그저 치고받느라 아랑곳하지 않는다.

 세상사 이러하니 민요 사철 가의 “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하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흔들 쓸데가 있나”라는 가사가 가슴에 와닿는다.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뜻으로, 어떤 처지나 상황이 때에 맞지 않음을 이르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고사가 있다. 병자호란 때 오랑캐에 끌려가 갖은 수모를 겪었을 조선 환향녀처럼 변방에 끌려간 ‘왕소군’을 묘사한 동방규의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시에서 비롯됐다.

 그 시 초입에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라는 표현이 있다. 왕소군은 서시, 초선, 양귀비와 함께 중국이 꼽는 4대 미녀 중 한 명이다. 이들 네 미인을 ‘침어 낙안 폐월 수화’라고도 한다.

 즉, 월나라 서시는 물고기도 부끄러워 물밑으로 숨는다는 침어(沈魚), 왕소군의 비파 타는 모습에 반한 기러기가 날갯짓을 멈춰 땅에 떨어졌다는 낙안(落雁), 고개 들어 달을 바라보자 달도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는다는 초선은 폐월(閉月), 꽃을 건드리자 꽃도 잎으로 가리며 부끄러워했다는 양귀비의 미모는 수화(羞花)라고 한다.

 왕소군은 유방이 초나라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운 때의 궁녀이다. 서경 잡기에 여색을 탐했던 유방은 후궁들을 일일이 보고 선택할 수가 없자, 모연수라는 궁중 화가에게 후궁들의 초상화를 그려 바치도록 했다. 그리곤 침소에 들게 할 마음에 드는 후궁을 낙점했다.

 그러자 후궁들은 경쟁하듯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면서 잘 그려주도록 간청했다. 하나 절세미인 왕소군만은 뇌물을 주지 않았다. 이에 모연수는 그녀의 얼굴을 매우 추하게 그려 바쳤다. 당연히 그녀는 황제 유방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흉노족의 왕 호한야선우가 한나라의 미녀와 혼인하여 왕비 삼기를 청했다. 마지못한 유방은 자신이 추녀로 잘못 알고 있던 궁녀 왕소군을 그에게 보내기로 한다. 흉노로 떠나는 날 비로소 절세미인 왕소군을 보게 된 유방은 격노하여 모연수를 죽여 버린다.

 절세의 미모를 지녔음에도 황제와 마주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흉노의 땅으로 떠나야 했던 왕소군의 가련한 심정이야 어떠했으랴. 어쨌든 ‘춘래불사춘’이더라도 봄은 봄이니 농부는 농부대로, 선거 나선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밭갈이에 열중해야 할 중요한 때다. 입춘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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