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사과
상태바
미국산 사과
  • 최동철
  • 승인 2024.01.25 06: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05>

 한국전쟁 휴전 후, 60년대 초반까지 10여 년간 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선 ‘미제 학용품’이 인기였다. 특히 미제 연필은 압권이었다. 문화와 동아 등 국산 연필이 있었지만, 미제 몽당연필을 더 쳐주었다. 종이 뚫기 시합에서도 늘 미제 연필이 이겼다. 당시 ‘미제’는 어떤 상품이건 믿을 수 있는 최고 품질의 제품이었다.

 최근 정부가 설 명절 과일 물가안정을 위해 미국산 사과 수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이상기후에 따른 저온 피해, 우박 등 자연재해로 인해 상품 가치는 떨어진 반면 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올 초 ‘민생경제 1호 정책’이 농축산물 수입 문턱을 대폭 낮춰 물가를 잡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과수농가에선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민생안정을 내세운 물가 당국이 과일 등 농축산물을 물가 상승 주범으로 지목하고 수시로 수입 카드를 만지작대기 때문이다. 물론 농정당국은 사과 수입 검토 사실을 부인했다. 사과·배뿐 아니라 오렌지·망고 등 상대국에서 수입 허용을 요청한 농산물에 대해선 의례적으로 검토할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 다음 세계 최대의 사과 생산국이다. 연간 약 500만 톤의 사과를 워싱턴, 뉴욕, 미시간, 캘리포니아 등 5개 주에서 생산한다. 미국 전체 사과 생산량의 약 85%다. 2022년 기준, 미국의 사과 수출량은 490만 톤으로, 세계 사과 수출량의 약 20%를 차지한다. 품종 또한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후지’뿐 아니라 ‘허니크리스프’ ‘엔비’ ‘코스믹 크리스프’ 등이다.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동식물 위생·검역(SPS) 조치에 따라 검역상 문제로 버티며 사과·배 등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끊임없이 한국 과일 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18년부터 매년 ‘국별 무역장벽보고서(NTE)’를 통해 한국이 사과 시장을 불합리한 기준으로 개방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개방압력과 한·미 FTA에 따라 실상 미국산 사과의 관세 장벽은 낮아지고 있다. ‘후지’를 제외하곤 45%를 부과했던 미국산 사과 품종의 관세는 이미 2021년 철폐됐다. 현재 15.7%인 ‘후지’의 관세율 역시 점차 낮아져 2031년 완전히 사라진다. 종국에 가서는 쌀처럼 문호개방을 할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이냐, 몇 년 후냐 시기만이 문제일 뿐이다.

 전국사과 생산자협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우리나라 대표 과일인 사과가 수입된다면 단감과 배 또한 수입이 진행될 것이며 이들 품목 농가의 폐원과 작목 전환은 전체 과수 품목이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을 불러올 것”이라면서 “물가를 잡고 농산물 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해 외국산으로 대체한다면 한국 농업 생산기반을 무너뜨리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와중에 보은군 과수 거점 산지유통센터는 2023년도 총매출액이 104억 원을 달성해 목표액 80억 원을 웃돌았다며 흡족해한다. 곧 닥칠 과수농가의 위기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