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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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
  • 최동철
  • 승인 2024.01.1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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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인 ‘끝장’을 ‘이판사판’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이판사판 개판’, ‘이판사판 공사판’, ‘이판사판 합이 여섯 판’ 등으로 빗대어 비탄하거나 비판적 용어로 사용된다.

 이판사판은 본디 조선 시대 승려인 이판승(理判僧)과 사판승(事判僧)을 합친 불교 용어였다. 이판승은 참선 등 구도 수행하는 승려를 일컬으며, 사판승은 사찰을 관리하는 사무에 종사하는 승려를 이른다. 즉, 이판은 속세를 등진 승려이고 사판은 현실과 접한 승려라 할 수 있다.

 이 두 부류의 승려가 ‘끝장’ ‘막장’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데는 조선 시대의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억불숭유’정책에서 비롯됐다. 조선의 건국과 함께 고려 시대까지 흥했던 불교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찰이 폐쇄됐고 승려는 졸지에 천민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이판이든 사판이든 천민이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으로 변했고, 나아가 마지막에 몰린 상황을 가리켜 쓰이기 시작했다.

 지난 세밑 때 우리 고장의 명소이기도 한 유네스코 등재 법주사의 주지 승려가 불명예스럽게도 매스컴을 탔다. 마카오 등 해외 카지노에서 수십 차례 슬롯 도박 등을 한 혐의(도박·도박 방조)로 청주지검에 의해 불구속 기소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수년 전 법주사 승려 7명의 상습도박이 한 신도에 의해 고발되어 충격을 주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또다시 씁쓰레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마도 이들 승려는 사찰을 유지 관리하는 이른바 ‘돈 만지는’ 사판승이 대부분일 것이라는 데 있다.

 불교든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성직자는 일반인들의 도덕적·영적 지표가 되어야 한다. 도덕적으로 청렴하고 정직해야 하며, 모범을 보여야 한다. 따라서 도박, 매춘, 간음 등 일탈을 하는 성직자는 종교적 신념과 권위를 잃었으니 이제는 성직자 노릇을 수행해선 안 될 일이다.

 동남아 국가 중 라오스는 국민의 95%가 신도인 불교국가이다. 초창기 소승불교의 전통을 계승하며, 부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해탈을 추구한다. 욕망 억제 등 마음 챙김을 통해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믿는다. 

 라오스 불교의식 중 백미는 새벽녘 ‘탁밧’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일체의 물욕을 배제하겠다는 의지로 승려들이 음식을 구걸한다. 새벽 5시경부터 이판사판은 물론 고령의 주지 스님부터 10살 남짓한 동자승까지 일렬종대로 발우를 들고 맨발로 마을을 돌며 탁발한다.

 신도들은 승려들에게 쌀, 밥, 과일, 빵, 과자, 꽃 등 다양한 음식을 신실한 마음으로 공양한다. 당시 이를 참관하던 한국 승려는 “나는 저렇게 못 한다”하고 손사래를 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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