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오솔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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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오솔길에서
  • 김종례(문학인)
  • 승인 2024.01.1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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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웠다가 풀렸다가를 반복하던 예전의 삼한사온 날씨가 격주로 널뛰기를 하는 요즘이다. 이런 이상기후를 잘 견뎌내야만 찬란한 봄날을 만나리라고 위안을 삼아본다. 사계절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일 년이 아름답게 완성되듯이, 삶의 희로애락 조각보들이 모여서 인생 너울이 완성되나 보다. 해와 달이 소리도 없이 다시 바뀌어버렸으니, 세월이라는 스승 앞에서 인생이라는 느낌표를 끌어안는 요즘이다. 
  오늘은 자연적으로 생긴 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겨울오솔길을 선택하여 걸어본다. 계절의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속내까지 다 드러낸 나목마다 애무하는 바람의 연주가 호젓한 길이다. 연하고도 맑은 산새들 노래와 벗하면서 신의 무한한 능력을 깨닫는 사유의 길이다. 산새들 지저귐이 예전 그대로 청량해서인지, 솔가지 사이 석양빛이 예전 그대로 찬란해서인지, 추억이라 할 것도 없이 잠시잠깐 풋풋했던 첫사랑까지 슬며시 나타나니 말이다. 한참 가다가 두 갈래 갈림길에서 발길을 멈추곤, 한 번도 안 갔던 좁은 길을 선택하여 무작정 올라갔다. 뼈다귀만 앙상한 칡넝쿨 나체와 멍게나무 가시덤불이 뒤엉켜져 두려움이 앞섰으나, 생소한 길에 호기심이 생겨 한참을 오르다 길을 잃고 말았다. 문득 순간 잘못 선택하여 평생 힘들게 엮여졌던 젊은 날의 능선 하나가 반추된다. 경솔하게 선택했던 삶의 방향과 각도가 우리네 여정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오솔길이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수많은 길(路)을 만나게 되며, 그 수많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절박함의 순간을 접하게 된다. 길이라는 뜻의 한자를 살펴보면, 길 도(道)와 길 로(路)가 있는데, 도(道)의 뜻을 가진 길에는 자연적인 길과 문명적인 길로 나뉜다고 한다. 아마도 등산길과 케이블카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路)의 뜻을 가진 길에는 여로(旅路),험로(險路),기로(岐路),미로(迷路),진로(進路),활로(活路),퇴로(退路), 그리고 천로역정(天路歷程)등, 인생살이 희로애락 숨결이 각양각색으로 배어있는 길들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오솔길은 도(道)이기에 다시 돌아내려올 수 있었지만, 잘 못 들어선 인생길 로(路)에서는 어찌 쉽게 뉴턴을 할 수가 있었으랴 ~  道에서는 마치 운전 할 때의 끝까지 주행인가? 뒤돌아 가는 뉴턴인가? 로 쉽게 방향전환을 할 수 있겠지만, 한번 선택한 인생길(路)에서는 중도하차나 방향전환이 어렵기 때문에, 끊임없는 도전과 역전의 실랑이를 반복하며 살아가게 된다. 
  카톨릭 월간지에서 읽은 한 신학자의 말이다.‘사람이 인생의 날수는 정할 수 없지만, 삶의 깊이와 넓이는 정할 수가 있다. 내가 타고난 얼굴을 선택할 순 없었지만, 표정과 얼굴은 내가 관리하는 것이다. 사람이 운명적인 길(路)에서 모진 고통을 겪으면서, 삶의 방향과 각도를 전환할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 타인이 내 모습을 어떤 빛깔로 인지하더라도, 그에 대한 긍정적 반응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라고 하였다. 우리의 미래는 길의 방향과 각도의 신중한 선택에 따라서 결정되므로, 장애물을 만날 적마다 반전의 메시지를 자신에게 들려주며 가야 할 것이다, 즉 돌출된 문제점을 격파하고 깨트리며 정립해 나가는 불파불립(不破不立)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은 벽두새벽의 새해 새 빛이 우리의 길을 환히 비추도록 기도해야 할 때이다. 조금은 성숙해진 모습으로 올 한해의 갈 길(路)을 선택해야 하는 절호의 타이밍이기 때문이다.‘해마다 이맘때면 갑자기 철이 들어 버립니다. 일 년치의 나이를 한꺼번에 다 먹어져 말소리는 나즉나즉~ 발걸음은 조심조심~ 저절로 철이 들어 늙을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근하신년 싯귀가 머릿속에 맴을 도는 요즘이다. 매끄러운 새 달력장을 매달고도 무엇이 아쉬운지 자꾸만 뒤돌아보는 내 초라한 모습. 온전한 감사를 선뜻 드리지 못했음과 아낌없는 함박웃음 건네지 못한 인색함 때문이리라. 이제는 아쉬웠던 부분은 저 석양처럼 침몰시키고 희망의 내일을 건져 올리는 새벽녘이다. 갑진년의 끝을 바라보며 한해의 설계도를 그려야 하는 홍유성죽(晎有成竹)의 시점에서, 보은 군민들의 발걸음은 얼마나 조심스럽길래, 말소리는 또 얼마나 나즉거리길래 이리도 고요한 1월인가! 나도 한해의 길(路)을 자문해 보기에 안성맞춤인 겨울오솔길을 조신거리며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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