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인상의 표본 의열문(義烈門)’ 소고(小考)-최종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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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인상의 표본 의열문(義烈門)’ 소고(小考)-최종편
  • 김병서
  • 승인 2023.12.28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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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열녀도.
신속열녀도.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1903~1982년)
“한 놈의 적이라도 퇴치한다는 거룩한 의기! 비록 제 살 끝의 한 부분일망정 더러워진 것은 그냥 그대로 붙여두고 싶지 않아 도려 버리고 말은 그 지극히 청결한 인생관! 그것이 어렵다는 말이다. 그것이 귀하다는 말이다. 그 인생관 앞에는 제 생명까지 내어던진 부인에 대하여 오늘 이 말세의 못된 우리들이 가지는 그릇된 사고 방식이 얼마나 뻔뻔스러운가”라고 기록하고 있다.
친일논란 및 친독재 행적으로 지탄받고 있는 사람이 “가을을 안고”라는 기행문에 여행 중 접한 신씨부인의 행장을 근간으로 자신의 소회를 간략하게 기록해 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없었던 인물이 왜놈에게 목숨으로 항거한 고귀하고 거룩한 행장을 함부로 입에 올리고 있으니 인지부조화에 따른 자기변명으로 보이는 글이다.
친일청산이 좌절된 일그러진 현대사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밀려온다. 
“얼마나 뻔뻔스러운가"라고 한 말은 그와 그리고 또 다른 “오늘 이 말세”를 만든 사람들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3.닫는 말
신씨부인 묘소 앞에는 2000년 2월 후손들이 세운 묘갈이 있는데 비문은 부인의 13대손인 전 보은문화원장 미산(嵋山) 김건식(金建植) 선생 글이다.
끝 구절은 “비문은 대문장 연릉군 이호민이 찬하였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아! 슬프다. 찾을 길 없어 졸문(拙文)으로 대각(代刻)하니 송구(悚懼)한 심회(心懷)를 후인은 해량(諒解)할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오봉집을 통해 이호민이 쓴 비문을 직접 찾아 확인한 것은 엄친의 슬픔을 늦게나마 덜 수 있게 된 것으로 부친께서 만들어 놓은 길을 넓혀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 감회가 더 없이 크기만 하다.
반복된다고 하는 역사를 배우는 목적 중 하나는 인류가 공동선으로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짓밟고 억누르며 공동체의 역사적 진보를 가로 막았던 불행한 일들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얻어 현재를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인종, 민족, 국가라 불리는 집단의 결속이 더욱 강화되는 쪽으로 진화해 왔음을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세계화나 글로벌이란 말은 헛된 정치적 구호일 뿐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까지 반성하고 사과하라 말하진 않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자행된 박해 및 탄압과 착취에 대한 일본의 진솔한 반성과 사과가 없이 진행되는 한일관계는 허구이고 신기루일 뿐이다.
특별한 것엔 특별한 대우가 있어야 한다.
항왜(일)정신이 올곧게 스며있는 의열문을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이며 안정적으로 관리하여 후대들에게 전하기 위해선 국가(지방)문화재로 등록시켜야 한다.
의열문에 서려있는 신씨부인의 항왜(일)정신은 “조선 여인상의 표본”으로 청사에 기록되어 있고 민족과 함께 영원할 것이다.

*PS
당대의 명 문장가인 이호민과 이준 선생께서 한문으로 쓴 글을 모자라고 부족함이 넘치는 능력으로 온전히 해석할 수 없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관련 문헌과 사료를 찾고 확인한 것도 과분한 일이였다. 
완전한 국역을 또 다른 사람의 몫으로 남겨 두는 송구한 마음을 이해해 주길 그저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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